반성과 용서의 눈물
세계적인 위인 마하트마 간디의 자서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간디는 청소년 시절 부모 몰래 육식도 하고 담배도 피웠으며, 심지어는 돈까지 훔쳐 담배를 사기도 했다. 그러나 간디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든 죄를 종이에 낱낱이 써서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 앞에 바친 후 처벌받기를 간청했다. 평소 불같은 성격의 아버지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고, 소년 간디도 역시 뜨거운 눈물로 반성했다고 한다. 간디는 그때 비폭력운동의 씨앗이 자기 마음에 싹텄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로 인해 비폭력 저항운동의 선구자이자, 위대한 평화의 영적 스승이 되어 세계인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눈물이라는 것은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슬픔이 복받칠 때도 눈물이 나지만 벅찬 감동이 일어나거나 기쁠 때도 눈물이 난다. 그리고 깊은 반성으로 인해서 자신의 내면을 발견할 때도 흐르는 것이 눈물이다. 지금 여기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눈물은 슬프거나 기쁠 때 흐르는 눈물이 아니고, 자신의 부끄러운 내면을 발견하고 드러냈을 때 흐르는 반성의 눈물과 그 반성에 대해 한없는 자비심으로 흐르는 용서의 눈물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누구든 깊은 반성에서 나오는 눈물은 자신의 마음을 씻어주는 정화수일 뿐만 아니라 그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용서의 눈물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눈물은 여타 종교에서 말하는 ‘죄를 씻어내는 치유의 묘약’이라고 할 수 있다. 송대의 주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자리 잡은 나쁜 습관을 불승지환(不勝之患 : 이길 수 없는 환란)이라고 하였다. 옛날 선비들에 공부했던 수신(修身) 공부가 바로 이러한 불승지환을 닦아내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사사로운 욕심과 나쁜 습관 때문에 선한 본성이 막히거나 오염되어서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환란에 빠지기 쉬운데, 뜨거운 반성의 눈물을 흘리게 되면 그 불승지환이 닦아져서 본래의 착한 본성이 드러나게 된다. 간디는 바로 그러한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런 눈물을 흘렸을 때 그를 지켜보던 아버지 역시 평소에 불같이 화를 내던 불승지환도 씻겨져 용서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이렇게 반성의 눈물은 용서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힘을 가진 생명수와 같은 것이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많은 갈등과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정치권에서의 대립뿐만 아니라 정부와 의사들 간의 갈등, 지역사회에서의 갈등, 가족간의 갈등에서 국가 간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깊은 반성의 눈물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스스로 반성 없이 상대의 반성을 요구하거나 용서를 바라는 것은 마중물 없이 펌프질을 하는 것과 같다. 반성의 눈물은 용서의 마중물과 같다. 그런데 반성의 눈물은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 즉 불승지환을 극복하고, 내면의 참모습을 발견했을 때 흐른다. 그것은 마치 절대적인 존재와의 만남이고, 천국을 경험하는 일과 같다. 그래서 그러한 눈물이기 때문에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진정한 반성과 용서는 상대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에게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확신이 든다. 스스로 불승지환이 닦아져서 본래의 깨끗한 마음이 되고 나면 내가 구태여 요구하지 않아도 상대는 이미 용서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어린이 교재로 활용된 <소학(小學)>책에는 이러한 일화들이 수록되어 있다. 진(晉)나라 함녕(咸寧) 연간에 큰 전염병이 유행하였는데, 유곤(庾袞)의 두 형이 함께 사망하고, 다음 형인 유비(庾毗)도 병에 결렸다. 그래서 부모와 여러 아우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 피했으나 유곤(庾袞)은 홀로 남아 친히 형을 부축하여,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았으며, 그 사이에 또 죽은 형의 영구(靈柩)를 어루만져 슬피 울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와 같이 한지 백여 일이 지나자 병의 증세가 호전되어 집안사람들이 돌아와 보니, 유비(庾毗)의 병도 쾌차되었고 유곤(庾袞)도 또한 병이 없었다고 한다.
또 이런 내용도 있다. 소경(蘇瓊)이 태수(太守)가 되었는데, 백성 중에 을보명(乙普明) 형제가 토지를 다투어 여러 해가 지나도록 판결이 나지 않아, 각각 서로 증인을 끌어들여 증인이 백 명에 이르렀다. 소경(蘇瓊)은 을보명(乙普明) 형제를 불러 눈물을 흘리며 타이르자, 모든 증인들도 눈물을 뿌려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 후로 을보명(乙普明) 형제는 따로 산 지 10년만에 마침내 돌아와 함께 살았다는 것이다.
이상의 두 사례에서도 공통적인 점은 눈물을 흘려서 자신도 구하고 상대도 감동시켜 용서의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이다. 지금 자신의 불승지환은 돌아보지 않고, 타인의 반성과 용서만을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