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멋진 가을 (여행이야기)

2024-11-14     오계자 (보은예총 회장)

산천이 가을 축제를 벌이기 시작하면 덩달아 온 나라가 야단법석이다. 항간에는 구석구석이 축제라고 못마땅해 하는 이도 있지만 폭염에 축 처진 기분과 분위기 업그레이드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해마다 곱고 예뻐서 내가 좋아하던 미원 자전거 길 단풍이 올해는 시원찮아 아쉬워하며 지나오는 중 ‘까꿍’ 반가운 이름이 뜬다. 그렇잖아도 엉덩이가 들썩이던 참이다.
길가에 정차하고 폰을 열었다. 백두대간 국립 수목원과 봉정사 입구 긴 단풍 길 사진이다. 대학 동기 모임에서 지난달 결정하기를 영주 국립 숲 치유센터에서 1박하기로 했다. 그런데 회장 맡은 친구가 맘고생을 많이 했단다. 매월 15일 9시부터 예약 신청을 받는데 미리 홈페이지 들어가서 준비하고 있다가 9시와 동시 신청 클릭을 했더니 컴이 고장이더란다. 애를 태우다가 산림청에 근무하는 조카에게 연락 했고 조카의 대답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방문으로 일시적 현상이었으며 이미 주말은 예약 끝이란다. 
조카와 상의해서 봉화 백두대간 국립 수목원 내에 있는 수련원은 주말이 휴일이라 숙박이 가능해서 장소를 변경했지만 회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메시지였다. 
두말 필요 없이 만장일치로 “찬성이다. 고생했다!” 
들뜬 마음을 자제하지 못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11월 첫 주말, 안동휴게소 부산방향에 주차를 해놓고 춘천방향으로 건너가서 대구 출발 버스에 합승했다. 할매들은 마냥 신났다. 옛날 수학여행 가던 그 분위기다. 먹고 떠들고 입이 제일 바쁘다. 대화의 주제가 기숙사 시절이요, 교수 뒷담이다. 
부석사 입구에서 내리자 에구, 에구 할머니 티를 내는 걸음걸이들, 세월이주고간 선물 아닌가, 아랑곳없이 사진 찍기에 바쁘다. 다행인 것은 부석사 무량수전까지 노인들에겐 제법 긴 오르막길인데 열여덟 명 전원이 다 올라 왔다. 무량수전 앞마당에 서서 멀리 바라보노라면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 첩첩산중 먼 산은 가슴이 탁 트인다. 언젠가 바로 이 자리서 일몰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웠던 적이 있다.  
목적지 국립 수목원에 도착했을 때는 온갖 가을꽃들이 화려하게 단장을 했고 단풍들이 반긴다. 하지만 이미 태백산의 단풍과 소수서원의 거대한 은행나무 등을 즐기던 눈높이에는 자라고 있는 수목이 소년소녀들이다. 그런 중에 트램은 우리를 호랑이 숲에 내려놓았다. 진짜 호랑이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있다. 호랑이가 나올 법한 숲에 모형을 만들어 두었겠지 했던 내 짐작이 민망했다. 
아이들은 환호를 하며 뛰기도 하는 관광객 사이로 간신히 동영상으로 담았지만 어쩐지 호랑이 부부가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훈련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마치 정해진 길을 산책하듯 두 마리가 번갈아가며 관광객 앞을 지나 울타리 주변을 걷는 모양새가 활기가 없다. 울타리 안에 숲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고양이들처럼 둘이서 장난도 하고 뛰고 노는 자유가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무료할까, 호랑이니까 밤이면 활기를 찾으려나? 그래도 살짝 허전함을 느끼던 수목원 이미지를 호랑이가 채웠다.   
만족한 식사와 저녁 티타임은 왜 늙으면 어린애가 될까, 그 의문을 풀리게 했다. 자제력 떨어지고 세상근심 다 내려놓은 할매들은 천진난만했다. 학창시절 내숭쟁이도 수다쟁이가 되었다. 
이튿날은 봉정사 입구가 마침 사과 축제로 인산인해다. 사과의 고장 대구에서 자란 할매들이 맛을 보더니 아들네 딸네 택배 주문하느라 시간을 제법 많이 소모했다. 
봉정사 올라가는 길도 숨을 헐떡이면서 전원이 다 올랐다. 대웅전도 영산암도 관심들 없다. 서로 예쁜 포즈 멋진 포즈 잡기에 여념이 없다. 나는 서넛이 영산암으로 향했다. 극락전과 대웅전도 유명하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最古 목조건물보다 영산암 마당에 품위와 고고함을 뿜어내는 모습, 묵묵히 역사의 사연들을 품고 서있는 소나무와 배롱나무가 더 보고 싶었다.
옆 친구는 며칠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경북도청에 식수하러 왔다가 여기 들리셨는데 그날 마침 만나서 악수도 하고 대화도 했다며 자랑이다. 친구의 자랑을 뒷전으로 내부 나한에 피어있다는 만다라 꽃 찾기에 더 마음 기울였다. 둘이서 열심히 살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우린 서로 쳐다보며 계면쩍게 웃었다. 
돌아오는 길 할머니들은 “건강 잘 챙기래이.” 내년 봄나들이를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