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남대교 끄트머리 그래도
충청북도에 지방도 571호가 있다. 보은군 회남면에서 청주 미원면까지 총연장 31킬로의 충북 오지를 달리는 꼬불꼬불한 산골길이다. 이 도로는 원래 대전-회인선으로 대전시 세천동 삼거리에서 보은군 회인면까지의 도로였는데, 1989년 대전시가 광역시로 확대 개편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 더 변화를 겪었다. 대전광역시 63번 시내버스가 대전역 동광장에서 출발하여 세천 삼거리를 거쳐 보은군으로 진입한다. 회남면사무소 앞 광장까지 왕복 69킬로의 꽤 먼 거리를 3대가 하루 꼬박 15회씩 교대로 운행한다. 대전에서 보은군으로 진입하는 유일한 시내버스다. 이 고마운 63번 버스의 통행로 상에 회남대교가 있는데, 1981년 6월에 완공된 대청다목적댐이 건설되면서 탄생했다.
회남대교는 보은군 회남면 매산리와 어성리 사이의 대청호 위에 놓인 다리다. 높이 57미터 길이 452미터 너비 10미터의 2차선 다리로 인도는 없다. 8개의 원통형 교각 위에 1퍼센트 경사지게 상판을 설치했다. 1978년 착공하여 대청댐이 건설되기 한 해 전인 1980년에 완공되었는데, 당시 국내에서 수면으로부터 가장 높은 다리라고 보도되었다. 대청댐 건설 이전에는 회남대교 구간을 배로 건넜다. 어부동(사음리)과 사탄리(사저울) 사이에 뱃길이 있었다. 버스나 화물트럭 같은 대형차를 실어나르는 나무판자로 상판을 깐 큰 배와 사람을 실어 나르는 작은 배가 있었다. 둘 다 사공이 노를 젓는 배였다. 강을 건너서 회남면사무소나 회인 오일장 더러는 청주에 볼일 있어서 가는 승객들이 많지는 않았어도 일 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 면사무소는 현 위치에서 한참 아래쪽에 그때도 초등학교와 같이 있었는데, 영당이라는 동네였다.
회남대교가 번듯하게 세워지고 63번 버스가 달리자 회남면 일대는 대전 생활권에 가깝게 변했다. 회남면 종점에서 출발하는 새벽 6시 첫차에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냉이 고춧잎 머윗대 같은 봄철 채소를 대전역 새벽시장으로 실어 나르는 보따리장수 할머니들로 언제나 만원을 이뤘다. 당시 필자는 금요일마다 대전에서 야간강좌를 얻어 강의를 마치고 나면 늦은 시간까지 학창시절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저녁 먹고 술 한잔하고 나면 버스가 끊겨 부모님이 계신 회남면 산수리까지 가끔 택시를 탔다. 한 번은 기사가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회남대교까지 가시는 건 아니지요? 아닙니다. 왜요? 글쎄 손님이 바람 좀 쐰다며 회남대교 중간에 잠깐 세워달라고 한답디다. 다리 난간에 서 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다리 아래로 뛰어내린다는군요. 밤낮이 없어요. 우리 같은 기사들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지요. 요금 못 받는 건 둘째 치고, 파출소를 몇 번씩 불려 다녀야 해요. 하루나 이틀은 완전히 공치는 날입니다.
가까이에 두고도 잊고 있는 사이에 회남대교가 자살 대교라는 별칭을 얻은 서울의 마포대교를 닮아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2023년 초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4명이 투신자살하였고, 같은 기간 중 6명의 자살 시도자가 가까스로 구조되기도 하였다. 2024년 4월 보은경찰서가 발 벗고 나섰다. 관내 모든 유관기관에 협조를 요청하고, 국회의원과 군의원 등 지역 유지들을 상대로 회남대교 안전시설 보강의 필요성을 적극 홍보하기 시작하였다. 5월 29일에는 KBS 청주방송이 “사망 사고 계속되는데 다리 안전시설 보강 난색” 제하의 자살 방지대책이 시급함을 방영하였다. 6월로 접어들면서 여러 언론매체가 이 문제를 잇달아 보도하기 시작했다. 중부매일, 뉴스1, 세계일보, 충청매일 등이 가세했는데, 특히 중부매일은 예산과 설계도면이 없어서 제때 투신 예방시설을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적인 기사를 실었다.
6월 12일 도지사 주재 보은군 도정보고회에서 보은 경찰서장은 ‘회남대교 투신 예방시설 설치’를 건의하였고, 도지사가 예산 배정을 확답함으로써 자살 대교의 낙인이 찍히기 일보 직전에 멈춰 섰다. 중도일보는 보은경찰서가 역설한 자살 예방과 환경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기사를 실어 향후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그래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벚꽃 길에 놓인 회남대교가 오명을 씻고 동시에 ‘도시형 농촌건설’이라는 군정 목표를 보전하게 되었다. 나름 미려한 투신 예방시설이 완공되면, 더 이상의 비극적인 뉴스는 종결되는 것일까? 회남대교 끄트머리에 김승희 시인의 그래도가 있다.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島)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후략). 그래도 시비를 어디 한 군데에 세우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