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우린 물을 사랑한다. 물을 사랑해서 옛날부터 물 지키기 환경운동을 해왔다.
1989년 여름 어느 날, 나는 존경하는 선생님 댁을 방문했다. 그분은 비로산장에 오셨을 때 우리 아버지한테 받은 <목마른 사람에게 먼저 물을 주라>는 휘호를 간직한 분이었다. 나는 밀가루 1킬로그램을 사 들고 갔다. 이 이상한 선물에 사모님이 함박 웃으며 “우리 부침개 부쳐먹으라고 밀가루를 사왔나 봐.”하셨다.
“사모님 설거지할 때 세제 대신 밀가루 사용하시라고요. 저희 비로산장은 물이 고마워서 물 지키기 환경운동을 합니다. 합성세제 대신 무공해비누 쓰지요. 이불빨래도 무공해비누 써서 빨아요. 비누를 조금 잘라서 물에 끓여 그 비눗물로 세탁기 돌려요. 머리 감을 때도 샴푸 대신 비누 써요. 머리 뻣뻣하지 않도록 마지막에 식초 한 방울 넣어 헹궈요. 원시인 같지요? 이런 운동이 수고스럽긴 해요. 그래도 사명감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합니다. 물을 지키는 것이 물을 지키는 것이면서,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고, 모든 생명을 지키는 것이니까요.”
선생님은 어떤 고매한 철학자의 강의를 들으시는 듯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나의 이 수다스런 말들을 경청하셨다. 내 이야기가 끝났을 때 사모님이 샘물 솟아나는 듯 밝고 맑고 명랑한 목소리로 한 말씀 하셨다.
“아유, 세상을 그렇게 불편하게 어찌 살아. 그래도 조금은 써야지. 하나도 안 쓰고 어떻게 살아. 하이타이를 조금만 사용해도 와이셔츠가 얼마나 깨끗해지는데.”
내가 다시 고했다.
“사모님, 알아요. 조금만 타협하면 얼마나 편안한지 잘 알아요. 그러나 저희는 물을 아주 많이 사랑해요. 물을 사랑하니까 물 지키기 위한 고생들을 달갑게 받아들여요.”
그로부터 1달 후, 나는 선생님의 강연장에 친구들과 함께 참석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놀랍게도 강연 중에 물에 관한 비유가 나왔다.
“우리는 물이 깨끗할 때 물을 지켜야 합니다. 물이 일단 오염된 후에 물을 깨끗이 하려면 그 물이 처음처럼 깨끗해지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과 수고가 들어갑니다. 라인강이 깨끗했다가 독일의 산업화로 급속히 오염되었고, 그 오염된 라인강을 다시 깨끗한 물이 되도록 하는 데는 5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물 회복에 50년이 걸린 것입니다.”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며 밀가루 한 봉지의 선물이 선생님을 물 지킴이로 만들어드린 것 같아서 그때 나는 뿌듯했다. 그랬다. 우리 비로산장 사람들은 자연이 벗이어서 자연을 지키고 돌보며 살아왔다. 물이라는 자연도 비로산장의 죽마고우 같은 절친이어서 유난스럽도록 심혈을 기울여 물 지키기 환경운동을 하며 살아온 우리 가족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우린 물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