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과 다름의 문제

2024-10-24     박평선(성균관대학교 유교철학 박사)

 오늘날 우리 사회는 “틀림과 다름”의 문제를 혼돈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근래에 들어서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예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오는 것일까? 
 한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면, 세모와 네모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그러나 세모를 네모라고 주장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또 파란 신호등과 빨간 신호등은 다른 것이다. 그러나 파란 신호등을 빨간 싱호등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그런데 종종 세모를 네모라고 주장하거나, 빨간 신호등을 파란 신호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사사로운 욕심이 까어 들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소위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일 경우는 주변 사람들도 동조를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가 되기 쉽다. 이는 과거에도 있어 왔다. 그 유명한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사자성어가 나오게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이는 ‘사슴을 말이라고 주장한다’는 뜻으로 진나라의 환관 조고(趙高)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황제 앞에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자, 주변에 있던 신하들이 두려워서 대부분 조고의 말에 동조하였다는 일화에서 생겨난 사자성어이다. 즉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그런데도 신하들은 권력 앞에서 틀렸다고 주장하지 못하고 만다. 
 다름에 대한 사례로는 동양인의 사고와 서양인의 사고가 그러하다. 예를 들어 방위를 말할 때 동양인은 왼쪽이 동쪽인 반면에 서양인들은 오른쪽을 동쪽으로 본다. 이 외에도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살펴보면 상당히 다른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 미시건대학교 석좌교수 리처드 리스벳이라는 심리학자는 미국인들과 동양에서 온 학생들 간에 사고체계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연구했다. 그가 연구한 것을 토대로 쓴 책이 “생각의 지도”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리스벳 교수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는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지난 100여년 동안 서구문화를 접하면서 상당한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틀린 것은 틀린 것이고, 다른 것은 다른 것이다. 틀린 것을 다른 것이라고 우겨서도 안 되고, 다른 것을 틀렸다고 우겨 서도 안된다. 그런데 이것을 잘 구분하려면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냥 보여지는 대로만 보고 판단하게 되면 상당한 오류에 빠지게 된다. 
 지금까지 5천년 역사를 자랑해온 우리의 사고체계를 지난 100여년 동안 서구식 교육을 받아온 우리 국민들은 가치관의 혼란에 빠져있다. 동양식 사고로 말해야 하는지 서양식 사고로 받아들여 하는지 혼란스러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다문화사회가 되면서 이제는 세계인들이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틀렸다고 말한다면 갈등이 발생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다름의 문제가 더욱 부각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그런데 다름을 강조하다 보니, 이제는 틀림이라는 문제가 상대적으로 무감각 해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뭔가 잘못하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틀렸다고 말하지 못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근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본을 알면 틀린 것인지, 다른 것인지 구분할 수가 있다. 만약 근본을 알지 못한다면 틀린 것을 다르다고 말하거나, 다른 것을 틀렸다고 말하더라도 바로잡을 수가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더 심각한 오해와 갈등을 발생시킬 수 있다. 
 그런 것들 중의 하나가 제사 문제아다. 요즘은 가을 제사가 많은 계절이다. 그런데 제사를 지내는 시간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에 큰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모님 제사를 돌아가신 전날 저녁 11시부터 지냈는데, 이제는 시대에 달라졌으니 초저녁에 지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전날 초저녁에 지내는 것보다는 돌아가신 날 저녁에 지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 지내는 것이 좋은지 혼동이 된다며 물어온 것이다. 그런 주장은 분명 다름이 아닌 틀림의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제사의 근본은 정성에 있으니, 전날부터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자녀들이 모여 부모님을 그리워 하는 것이 중요하며, 굳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고자 한다면 돌아가신 날 아침에 올리는 것도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얼마 후에 큰형님께서는 가족 단톡에 돌아가신 전날에 지내겠다고 문자를 올렸다. 개인적으로 큰형님의 판단이 옳다고 믿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