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지랖에 취해서
폭염에 달구었던 만상을 봄바람이 적당하게 식혀주려나 기대했더니, 오늘도 여전히 각오하라는 듯 하늘은 짓궂게 내려다본다. 올해는 봄부터 이렇게 뜨겁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맘때면 여기저기 축제마당이 열리고 초대를 기다릴 필요 없이 달린다. 그 중에서도 내가 해마다 쑥스레 달뜨는 곳이 대학생들의 축제다.
미리부터 볼웃음을 머금고 충북대로 향했다. 주요관심사는 청년들의 작품 전시다. 분위기가 부럽고 추억도 더듬을 겸 전시장부터 찾는다. 지난해는 피카소를 닮은 그림에서 청년들의 내면을 엿보며 한참을 서성이었다. 해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놀라고 구성하는 노련함에 놀란다. 내가 그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학생들의 그림 앞에서면 가슴으로 울림이 온다. 주는 매시지가 강하다. 내가 뜻을 찾지 못해 해설이 필요한 어려운 그림도 있었다.
올해는 사진전시장애서 보고 또 보며 맴돌았다. 지역 작가들의 사진과 확연히 다른 점이 조작하고 창작하는 학생들의 예술적 기질이다. 사물이나 경치를 옮겨놓는 것이 아니었다. 또 한 가지 내가 해마다 찾고 싶은 매력은 주 전시물보다 사진아래 붙여놓은 청년들의 짧은 멘트에 그들의 생각과 추구하는 방향이 함축되어 있기에 재미와 감동을 버무려 준다. 요즘 젊은이들의 톡톡 튀는 재치 속에 철학이 있고 희망이 있다. 학생들의 맑고 진솔한 표현에 덩달아 나도 신명이 난다. 기분이 좋다.
‘길을 잃었다’라는 주제의 사진 앞에서 나는 오래 머물고 서 있었다. 책 더미 아래 앉아있는 사진 속 청년의 이야기는 이렇다.
「살다보니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아서 헤맬 때
책이 인생의 나침반이 된다고 해서 서점엘 갔다.
나침반이 너무 많아서 결국 길을 잃었다.」
유머 감각을 곁들였지만 진솔하고 재미있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철학적인 멘트다. 지금도 가슴에서 맴돌며 속삭인다. 그 학생의 이야기를 보고 명색이 작가라는 나 자신 많이 반성했다. 멋진 표현만 갈구 했던 자신이 부끄럽다.
길을 찾고 싶을 때 서점을 찾는 그 청년의 마음가짐도 예쁘지만 어느 책을 볼까 망설임과 선택, 누구나 헤매 본 경험이 있을 법한 이야기를 마치 시인 서정주님이 국화꽃 이야기에 누님을 불러 앉히듯 이 학생은 나침반을 데리고 왔다. 너무나 감동적인 그 학생의 표현력에 반해서 늦은 밤까지 턱 고이고 책상에 앉아 있었다.
다음 날 나는 또 찾아가 그 멘트에 꼬리표를 달아줬다
「어느 나침반을 선택하든 가리키는 방향은 다르지만 목표지점은 바로 학생이 원하는 그곳, 학생의 목표점이라오. 그 나침반들은 모두 당신 삶의 영양소지요.」
오지랖 넓게도 꼬리표를 달아주고 돌아서 오는 길, 나의 발씨는 나비날갯짓이고, 학교 숲길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대학교 축제에 오면 젊음, 질풍노도의 길을 질주하는 활력이 보인다. 부럽다. 그리고 응원한다. 이 나라의 주역들 차곡차곡 내면을 채워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캠퍼스 숲길을 걸었다.
부침개와 튀김을 팔고, 잔치국수와 쫄면도 팔고, 떡볶이도 팔고 있는 팀들의 주변을 천천히 맴돌며 티 없이 시끌벅적 학생들 모습을 넋 놓고 봤다. 저희들끼리 주고받는 대화에서 세대차이가 아주 크지만 배우고 깨닫기도 한다. 젊은이들이 질풍노도의 길만 찾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잔잔하지만 당찬 노력을 하며 삶의 길도 배우며 걷는 모습이 참 좋다. 참으로 밝은 미래, 수준 높은 미래, 든든한 미래가 보인다. 요즘 학생들은 외모도 하나같이 예쁘고 잘생겼다.
아들도 딸도 더 낳을걸 그랬다. 언제든 어디서든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면 저절로 얼굴에 웃음기가 생긴다. 그냥 좋다.
나는 대학시절 뭐 했는가? 생각 없이 나날을 보내고, 마치 학점 따기 위해 들어온 것처럼 쿼터마다 도서관에 박히고 남들 하는 연애도 못해봤다. 생각해보니 참 답답하고 우매했다. 십년만 젊으면 대학 한 번 더 가고 싶다고 상상 하는 내가 찐 오지랖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