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송가(頌歌)

2024-10-02     양승윤(회남면 산수리)

  선배님이 보내주신 돼지감자꽃에 대한 에세이를 잘 읽었습니다. 저도 지난 십여 년 동안 꽃에 묻혀 사는 안식구 덕에 선배님처럼 작은 풀꽃과 가까이 지냈습니다. 정말 이쁘지 않은 꽃이 없습니다. 민들레도 망초도 엉겅퀴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모두 아름답고 신기합니다. 한동안 인근 마을에서는 천덕꾸러기가 된 칡넝쿨 제거작업을 했습니다. 소나무와 대나무뿐만 아니라 전봇대에까지 끝을 모르고 감아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지난봄 내내 걷던 산길도 온통 칡넝쿨로 뒤덮였습니다. 칡꽃은 옅은 보랏빛이네요. 고라니가 유독 이 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마음을 뺏기고 있는 대나무꽃도 무난하게 생겼습니다. 몇 해 전부터 윗 마당 사당 후원에 있는 대나무 숲에는 죽순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던 대밭이었는데 말이지요. 대나무는 죽순 굵기로 꼿꼿하게 자라서 4-5년이면 탱탱하고 짱짱하게 영급니다. 땅밑 뿌리도 이때쯤 탄탄해진다고 합니다. 제 어림으로 이곳 대나무는 키가 대략 20 미터 가량입니다. 죽순이 곧은 대나무로 자라서 성장점 부근에서 곁가지를 몇 가닥 키웁니다. 대나무가 촘촘히 서 있는 숲은 눈이 엄청나게 쌓이면 무더기로 무릎 꿇듯이 꺾어집니다. 여러 해 전 예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홀로 서 있는 대나무는 어떠한 기상변화에도 꺾어지지 않습니다. 뿌리가 단단하기 때문이지요. 일본에서는 전쟁 말기에 미군 폭격에 대비해서 방공호를 대숲 밑에 팠다고 합니다. 
   보리 이삭 같은 꽃이 피면 대나무 잎은 떨어지고 영근 꽃송이만 남습니다. 50년 70년 하는 한 바퀴 주기를 돌아온 것이지요. 잎이 없으니 광합성 작용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누렇게 변색하여 서서히 죽어갑니다. 비바람이 세차면 담뿍 빗물을 먹음은 꽃송이 무게로 대나무는 고개를 땅에 닿게 숙입니다. "저는 기운을 다했습니다, 주인님" 하면서요. 한참을 지나면, 고개 숙인 대나무의 뿌리가 드러나고, 여러 차례 비를 맞으면 땅속뿌리에서 분리되어 '쏙' 빠져 버립니다. 이웃 동네 대숲도 모두 수명을 다했더군요. 잎이 모두 떨어지고 몸통만 앙상하게 서 있습니다. 그렇게 몇 해를 선 채로 청청했던 생을 마감합니다.
   지난 5월 말께부터 하루에 한두 차례씩 대밭을 오르내리면서 비바람에 휘어지고, 꺾어지고 넘어진 대나무를 자르고 있습니다. 단단한 밑동 부분은 엇비슷한 길이로 잘라서 다섯 무더기를 쌓았습니다. 눈대중으로 무더기당 200개쯤은 될 것 같습니다. 세 토막으로 자릅니다. 대략 8미터짜리와 6미터짜리 두 토막을 먼저 자릅니다. 사용할 데가 있을까 하는 의문은 접어 두기로 했습니다. 도로 청소용 빗자루 제작 용도로 쓰였던 마지막 잔가지는 억셉니다. 칡넝쿨로 단단히 묶어 근처 산자락에 쌓고 있습니다. 수명을 다한 대나무 숲을 말끔하게 정리하는 작업은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가을 지나 겨우내, 어쩌면 내년 봄까지 갈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썰렁한 대숲에 올라 청량감 넘치던 바람 소리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에 대숲의 바람 소리가 맨 처음부터 나옵니다.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대숲에서는 제법 바람 소리까지 일었다./ 하기야 대숲에서 바람 소리가 일고 있는 것이 날씨 때문이랄 수는 없었다./ 청명하고 볕발이 고른 날에도 대숲에서는 늘 그렇게 소소(簫簫)한 바람이 술렁이었다./ 그것은 사르락 사르락 댓잎을 갈며 들릴 듯 말 듯 사운거리다가도, 솨아 한쪽으로 몰리면서 물소리를 내기도 하고, 잔잔해졌는가 하면 푸른 잎의 날을 세워 우우우 누구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래서 울타리 삼아 뒤 안에 우거져 있는 대밭은 언제나 물결처럼 대실(竹谷)을 적시고 있었다.” (끝부분 몇 자 생략) 
   대숲에 올려다 놓은 작은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혼불에 등장하는 바람 소리를 기다려 봅니다. 그러노라면 언제나 대나무를 아끼고 사랑하셨던 선친 생각이 납니다. 옛날 영화 <초원의 빛>을 기억하시나요? 같은 제목의 영국 시인의 대표작을 영화화한 것이지요. “한때는 찬란했던 빛이었건만, 이제는 사라진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래도 슬퍼하지 않으리... (슬픔 뒤에) 강한 힘으로 남으리...” 꽃을 피우면서 한 주기의 생을 마친 대나무가 추하게 주저앉지 않도록 마지막 가는 길을 무딘 톱과 낫으로 조금씩 보듬고 있습니다. 선친은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같은 대나무 찬가를 읊조리셨을 것이고, 대숲을 지키며 늙은 자식은 지금 떠나가는 대나무 송가를 부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