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함정
소통이라는 주제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에 하나로 강조되고 있다.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을 말한다. 이는 보여지는 형태적인 것이나, 보이지 않는 내용적인 것이나, 모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말에는 이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 상대방이 오해를 하면 “말이 그렇지, 뜻이 그런가”라며 자신이 했던 말에는 다른 뜻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곤 한다.
심리 상담을 할 때면 “대화법”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곤 한다. 특히 부부상담을 할 때면 갈등의 원인을 대화법에서 찾곤 한다. 대화법에는 청개구리 대화법과 앵무새 대화법이 있다. 청개구리 대화법은 청개구리처럼 상대의 말에 공감하지 못하고 어긋장 나는 말로 받아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앵무새 대화법은 상대방의 말에 “구나, 겠지”를 붙여주는 대화법으로써 상대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주는 대화법이다. 즉 감정의 흐름을 막지 않고, 자신에게로 흘러 들어왔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는 자신의 의견이 전달되었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에 답답하지 않게 된다. 반면에 청개구리 대화법을 사용하면 이미 감정이 어긋나서 자신의 의견이 상대의 감정에 흘러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때로는 화가 나거나 우울해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소통이 부재한 대화의 모습이다.
어느 날 초등학생이 부모에게 “오늘은 학교 가기 싫어요”라고 말했다고 하자, 그럴 때 부모가 “학교 가기 싫으면 나가서 돈 벌어 와”라고 했다면 청개구리 대화법을 한 것이다. 반면에 “오늘은 학교 가기 싫구나”라고 했다면 앵무새 대화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언어에 있어서 소통은 상대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받아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대화가 아닌 자신 스스로 어떤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소통방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의식이 편협되어 있거나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자칫 오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들 중에서 자녀들이 우리 부모님들의 성격을 이해할 때 지난 100여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전쟁과 가난이라는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상당히 많은 영역에서 소통이 단절되는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
최근에 보은군에서는 “2024 양성평등 주간 기념” 행사를 하면서 힐링콘서트를 개최하였는데, 강사이자 공연자가 나와서 자신의 가정을 스토리텔링하여 노래와 함께 멋진 공연을 펼쳐서 많은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자신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어머니를 많이 구박하고 무시했던 것에 대해서 양성평등을 못한 사례로 제시하며, 이제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양성평등을 이루었다고 말해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정말로 대견하고 훌륭한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렇게 어머니에게 야박하게 굴었던 성격이 어린시절 6.25전쟁을 겪으며 생긴 트라우마는 아니었을까? 가난 때문에 가족을 돌보느라 억척같이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기질은 아니었을까? 어떻게 보면 아버지의 기질이 암울했던 사회적인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 상처 입은 아버지의 마음을 먼저 보았다면 어땠을까? 그런 마음을 먼저 알아차리는 안목이 바로 깊이 있는 소통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행동을 드러난 모습으로만 판단하게 되면 우리는 자칫 소통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근, 현대를 살이 온 아버지들의 이러한 행동을 가부장적인 유교적 사고방식이라고 매도하곤 한다. 그런데 유교사상을 전공한 제가 보기에 그 어느 곳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오히려 유교사상의 핵심은 공자의 인(仁)사상을 근본으로 한다. 인(仁)이란 인간의 선한 본성으로서 “생명의 씨앗이자 순환하는 것”을 말한다. 즉 살려고 하는 마음, 살려주려는 마음, 소통하는 마음을 말한다. 의학서적에 혈액순환이 안되는 병을 “불인병(不仁病)”이라고 한다. 반대로 말하면 혈액순환이 잘 되는 것을 “인(仁)”이라고 할 수 있다. 인(仁)이란 순환이 잘 되고, 소통이 잘되도록 하여 생명력을 유지하는 마음이라고 송나라 때 유학자 정자(程子) 선생은 말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뿐만이 아니라 세상 만물도 살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고, 상호 소통하고자 한다. 소통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물이 모두 살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만물일체사상이 나온다. 만물은 생명력을 가지고 소통하려는 인(仁)으로 가득차 있다. 진정한 소통은 어떤 대상에 대해 본질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편견으로 판단하고 그 대상을 대하게 되면 오히려 소통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소통은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이 상호 잘 교류하는 길을 닦는 수신(修身)의 과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