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군 ‘삼년산성 사적 지정’ 위한 세미나 개최

‘보은 삼년산 고분군과 역사성’ 조명 사학 전문가 11명이 열띤 토론 가져

2024-09-12     김인호 기자
보은군

470년 전 축조한 ‘삼년산성 사적 지정’ 추진을 위한 학술세미나가 지난 5일 보은군청 대회의실에서 진행됐다. ‘보은 삼년산 고분군과 그 역사성’을 주제로 보은군과 충북도 그리고 국가유산청이 주최하고 충북문화재연구원과 호서고고학회가 주관했다. 군은 이번 학술세미나에 대해 2024년 사전 예비문화재 조사 지원사업의 하나로 2013년 충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보은 대야리 고분군의 사적 지적 가치를 밝히기 위해 이번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세미나에는 박성현 서울대교수, 김근영 서울역사편찬원, 서문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홍보식 공주대교수가 주제발표를,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 김영환 충북대교수, 이정빈 경희대교수, 전덕재 단국대교수, 김용성 한빛문화연구원, 심현철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장, 남익희 세종문화연구원 등 최고전문가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박성현 교수는 ‘5~6세기 신라의 금강 유역 진출과 지배 방식’이란 주제의 발표문에서 신라의 삼년산성 축조를 금강 상류 진출의 관점에서 고찰했다.
박 교수는 “신라는 금강 상류역에 진출해 기존 ‘국’ 중심지에서 성을 쌓은 것이 아니라 전력적 요충지에 산성을 축조했으며, 기존 신라 영역에서 어느 정도 신라화된 민을 사민시켜 성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며 “산성 인근 고분군은 이러한 사람들의 묘역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영관 교수 등은 “신라의 진출지역은 삼국사기 지리지를 기준으로 하면 모두 백제의 옛 지역이었다. 신라의 금강 상류 지역으로의 진출은 백제의 영역을 잠식해 나가는 과정이었는데 8세기 중엽 경덕왕 대의 지방통치체제를 기준으로 진출 지역을 전주, 상주, 웅주 등으로 구분한 까닭이 궁금하다”며 열띤 토론을 펼쳤다.
김근영 위원은 ‘삼국시대 보은 지역이 변화와 역사적 의미’란 주제의 발표문을 통해 보은과 주변 지역의 성곽과 고분 등의 유적을 통해 삼국시대 보은 지역의 영유 상황과 보은 지역이 갖는 역사적 중요성 등에 대해 조명했다.
김 위원은 “보은 지역은 백제와 신라가 성장하며 격전을 벌였던 지역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며 “보은은 신라 삼년산군으로서 신라의 영역 확장과 성장에 발판이 되는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삼년산성 고분군을 포함 산성리 고분군 등 대규모 고분이 있기 때문에 보은 5~6세기 군 편제에 이르는 시기의 자료는 보은의 지역적 특성을 밝히기 위해 주목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상주~보은~옥천으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관할했다는 것도 역사적 의미로 해석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정빈 경희대 교수는 “주요 유적의 입지와 수계에 주목해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연구사적 의미가 있다”고 김 위원의 논문을 평가했다.
서문영 연구원은 ‘보은 지역 고분군의 입지와 분포 특징’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각 고분군의 하상비고와 하천까지의 직선거리 분포지역을 분석한 결과 하상비고 29~101m 사이에 고분군이 분포하며 하천과의 거리는 300~1559m로 다양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고분의 분포하는 지형은 “대부분 산악지 또는 산록 경사지로 나타났다”며 “하천을 중심으로 생산 및 생활 공간이 입지했을 가능성을 상정한다면 각 고분군의 위치가 단순히 지리적 특성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 당대의 권력 구조나 상징적 의미가 반영되었을 수 있음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홍보식 교수는 삼년산 고분군과 신라의 정복지역 지배란 주제의 발표에서 “고분에 매장된 피장자들은 삼년산성 축성 및 운영에 종사한 구성원들 및 삼년산성 주위에 거주한 가주민들로 추정할 수 있었다”며 “신라는 호서 동부지역을 확보한 후 지방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방어하기 유리한 삼년산 구릉에 관방시설을 조성하고 주변 산록에 사후안식 공간을 조성하는 ‘성과+고분군’의 세트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탄생시켰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