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들이 다 스승이었다

2024-09-12     오계자(보은예총 회장)

‘세상이 학교요 선생님이다’
젊은 시절부터 듣던 잠언이고 무슨 뜻인지 안다는 생각에 별 관심 기울이지 않고 넘겼다. 독서를 소홀히 하지 않았던 지난 일상은 삶의 양식이었다는 자부심으로 자만하기도 했었다. 회식자리든 티타임이든 누구와의 대화이든 정치, 문화, 종교 등 어느 분야든 빠지지 않고 다양한 화두에 자신만만했다. 그 행동이 잘난척하는 짓거리로 오해를 받기도 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대화에서 빠지지 않았다. 여태까지 그렇게 얇은 지식만 믿고 덜 익은 생을 살아왔다. 
언젠가부터 슬슬 노후의 일상을 고민하면서 목표가 없으면 희망이 없는 건데 사람이 무슨 낙으로 살까 싶어서 나름 목표를 품었다. 지금 맡은 임무 마무리 하면 내 일상의 시공간은 도서관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외출도 줄이기 시작했다. 책과 벗 삼아 알차게 노후를 가꾸겠다는 다짐이었다. 
누군가 노년기는 상실의 시기라 했지만 ‘나는 닉네임이 두레박이잖아, 더 많이 퍼 올리는 노년기가 될 거야’라고 생각 하면서 여전히 덜 익은 다짐인 줄 몰랐다. 도서관에 쌓인 지식 퍼 올릴 생각에 마냥 신났다. 폭염쯤이야 아랑곳 않고 길벗의 시동을 걸었는데 “뒷집 새닥 차 있는 거 보니께 집에 있네, 이거 좀 먹어 봐, 뽕잎 순인데 아주 속잎만 따서 엄청 연혀.”하신다. 
시동을 꺼고 반갑게 모셨다. 검은 비닐봉지에는 파랗게 데친 나물 두 좨기가 앞집 할머니의 사랑을 담고 예쁘게 들앉아있다. 얼른 모시고 들어와서 좋아하시는 믹서커피랑 쿠키를 거실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시집오는 날부터 줄곧 듣던 호칭인‘새닥’은 내 나이 팔순이 삽짝거리에 왔는데도 아직이다. 그 호칭이 나는 싫지 않고 재미있다. 생각해보니 무심한 듯 부르는 호칭에 정이 묻어난다. 나도 편하게 지내는 주변에 호칭을 좀 신경 써봐야겠구나 또 한수 배운 것이다. 
동갑 친구들 모이면 단순하게 하하호호 웃는 시간이지만 무심코 던지는 벗들의 말에서 벌떡 정신 차리게 하는 삶의 훈시를 받기도 한다. 누군가 흉을 보던지 험담을 하면, 그렇구나, 별 뜻 없이 하는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하는구나, 조심해야겠다. 
한 친구는 손자가 4년제 대학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고 자랑이라서 물었더니 충청대학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가 뭔가 말을 하려다 마는 표정을 보았다. 그 친구 손녀가 충남대 의대에 합격한 걸 내가 아는데 앞선 손자 자랑에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는 그 표정. 자식자랑 손자 자랑도 눈치껏 해야겠구나. 또 하나 배운 것이다. 
그렇다 도서관에 쌓인 지식 퍼오는 것도 소중하지만 현실 체험에서 얻는 상식이 익어가는 인생을 더 감칠맛 나게 할 거야, 도서관에 가려던 발걸음은 방향을 돌려 청주로 가면서 친구들을 불러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나갈 거 없어 우리 집으로 와 더운데 얼음 냉면이나 한 그릇씩 먹어.”라는 말이다. 다섯이 모여 수다스럽게 떠들다 보니 그 수다는 단순하지 않았다. 저마다 대화 속에는 가르침이 있다. 비로소 깨달았다. 만약 새로운 정보가 아니거나 마음의 보약이 없는 수다라면 금방 식상했을 것이다. 수십 년 변함없이 외면당하지 않고 수다스런 만남을 즐기는 이유가 이거였구나, 지난해부터 동갑들 모임에서 강내에 있는 모 회사의 냉면을 권하며 주문들 해도 나는 인스턴트식품이 별수 있겠나 싶은 생각에 무시해 버렸다. 오늘 친구가 차려 준 냉면을 먹고 바로 20인분을 주문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우리들이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아주 많은 상식 보따리들이 오간다.   
세상은 학교요 선생님이라는 실감나는 체험이요 사소한 일에 크게 깨달은 날이다. 도서관에서 아무리 나만의 알찬 지식을 얻는다 해도 실재 체험하며 나누는 실습보다 나을 게 없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