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술씨 변혁속 세월 40여년-
외곬 땜장이 인생
1991-07-13 보은신문
각박한 현실속에서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이 보기에는 너무 진지하고 진실된 그의 모습에서 또한, 인생의 짙은 의미를 깨닫게 된다. 6·25동란 이후 처음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40여년의 땜장이 생활- 주위에서 불어닥친 새시대의 면혁속에서 태연자약하게 살아온 땜장이 생활은 그에게는 잊지못할 인생 여정이며 인생의 이력서와도 같은 것이다.
운동화, 슬리퍼, 구두가 우리에게 다가오기 전인 1960년대까지 번성하였던 땜장이 일은 그 당시 노동일에 비해 훨씬 나아서 이일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장원술씨는 고무신, 장화를 땜질하며 보낸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희뿌연 담배연기속에 추억에 잠긴다. 평안남도 덕천에서 태어나 일제시대 부모님의 손을 잡고 외속리면 장내2구에 내려와 정착한 후 농사지을 마땅한 땅이 없어 무척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처음 흰 고무신을 보고 무척 신고 싶었었다며 순수한 미소를 띄우는 그의 얼굴에서는, 깊게 패인 주름살과 드리워진 옅은 콧수염이 그의 웃음을 더욱 소탈한 모습으로 빛나게 한다. 작은 장작으로 불을 지피고 쇠로 된 기둥 2개에 고무신 주형을 대고 옆에서는 하얀 뭉게구름처럼 하늘로 날아가는 연기속에 땜질에 열중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한폭의 수채화와도 같다.
가끔씩 장작불로 백자 담배에 불을 붙이고 긴 한숨을 내쉬는가 하면, 어느새 이마에 구슬 땀을 흘리며 신명나게 일하는 장원술 씨의 모습에도 작고도 소중한 옛 사람들의 절약정신을 느끼게 된다. 인생의 부귀영화에 탐닉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일에 40여년의 인생을 걸어온 장원술씨- 그의 굵은 뼈마디속에 지난날 선조들이 어둡고 가난에 허덕이며 지켜온 우리들의 옛 모습과 절약정신이 살아숨쉬고 있기에, 정작 조금 풍족해졌다고 해서 무시되고 천대받는 땜장이 일에서 장원술 씨는 긍지를 찾는다,
요즈음은 장날 하루에 5∼7개의 고무신을 땜질하는 일이 고작이지만, 자기를 잊지 않고 고무신을 고치러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몸은 힘들어도 관기와 보은장을 꼬박꼬박 찾아 다닌다고 말한다. 이제는 서서히 잊혀져만 가는 우리들의 소증한 일들이 현대 문명속에서 골동품과 구태의연한 것으로 버림받는 것이 자못 아쉽기만 한 지금, 그 옛날 선이들이 지켜온 절약이 삶을 끈기있게 이어가는 장원술씨는 현재 외속리면 장내2구에서 3남 2녀의 자녀를 두고 다복한 삶을 살고 있다.
(금주에 만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