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빰이라는 이색 직업
인도네시아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다소 의아하게 느끼는 한 가지는 제복을 착용한 삿빰(satpam)이라는 경비원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다. 관공서나 대학교는 물론이고, 대형 쇼핑몰이나 각급 은행과 호텔과 회사를 막론하고 두세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에 이르는 삿빰이 출입문을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는 한 평 남짓한 안내소가 있게 마련이고 출입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들의 안내를 받게 마련이다. 신장 165㎝ 이상과 안경 미착용이 삿빰의 기본 조건이다. 고졸 이상이라는 학력 제한이 있기도 하고 경찰관서나 기타 유관기관에서 안전교육을 받았다는 확인서가 유효하게 작용하기도 하며, 더러는 무술 유단자를 우대한다는 부가 조건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들의 교육은 경찰관서에서 관장한다. 교육 내용은 경찰군(이 나라는 육해공군과 경찰군 4군 체제임)과 비슷하여 예절교육에서부터 제식훈련, 화재와 테러 예방, 체포 및 수색요령, 보호 감시, 순찰요령, 호신술 등이 포함되어 있다.
삿빰은 안전교육이나 치안 협력을 위해서 경찰관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자신의 근무 영역에서 범법자를 발견할 때는 즉각적으로 연락망이 가동된다. 회사의 규모나 성격에 따라서는 삿빰을 지휘하는 위치로 경찰관을 고용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당연하게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는데, 주변에 영향력이 남아 있는 퇴직 경찰관들이 주로 이런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삿빰의 복장도 예비 범법자들에게 위압감을 줄 목적으로 군복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검정색 운동모자에 흰색 상의와 짙은 청색 바지가 이들의 유니폼인데, 상의에 삿빰임을 나타내는 표식과 명찰이 부착되어 있다. 이들의 복장은 모두 비슷하지만, 전투복 차림을 선호하는 업소도 있다. 관광지 발리에서 이름나 있는 <무띠아라 발리>라는 보석가게는 성공한 한국 교민이 운영했는데, 이 업소의 삿빰들은 한국 특전사의 전투복을 착용하였다.
삿빰의 급료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고 초과근무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해당 지역의 최저임금이 기준(이 나라는 지역마다 최저임금이 다르다)이다. 인구 1,200만에 육박하는 수도 쟈카르타의 2023년 최저임금은 490만 루피아(40만 원)인데, 이들이 실제로 받는 월급은 600만 루피아를 웃돈다. 다른 지역보다 생활비가 월등하게 높은 이곳에서 과중한 업무와 낮은 임금 때문에 삿빰의 근무 태만이 일상사다. 휴일이나 근무시간 이후에 ‘알바’거리를 찾는데 더 열중하기 때문이다. 집 근처에 구멍가게를 연다든지 자신의 오토바이로 동네 사람이나 짐을 실어 나르는 일을 한다. 이곳의 대표적인 한국기업인 코린도(Korindo)에 근무하는 삿빰 몇 사람은 근무시간 후에 회사 내에서 세차 일을 하고 있다.
삿빰도 정년이 있다. 관공서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삿빰은 60세가 정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소속 단체나 업소의 내규에 따라 결정되는데 대개 50세 중반을 전후로 퇴직이 결정된다. 삿빰에 대한 초기 사회적 인식은 점차 퇴색하여 오늘날에는 일반 직업인의 하나로 변모하였는데, 지난 90년대 중반께까지는 수하르토 정권의 군사문화 영향으로 삿빰들은 유니폼을 입은 특수한 직업인으로 대접을 받았다. 이 나라는 현역 군인 이외에도 공무원들은 모두 제복을 착용하여야 한다.
일반 직업인으로 변모한 삿빰들은 업무환경 주변에서 다양한 허드렛일을 하고 약소한 사례비를 받는다. 가장 대표적인 일은 복덕방 역할을 대행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는 복덕방 제도가 일반화되지 않았다. 이런 역할은 주로 지역신문이 한다. 웬만한 지역신문은 아예 한두 면이 집, 자동차, 오토바이, 가구 등을 팔고 사는 한 줄짜리 광고로 채워져 있다. 신문광고를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안내하고 중계하는 일을 삿빰들이 거든다. 그러므로 웬만한 주택단지를 관리하는 삿빰들은 봉급 이외에 복덕방 역할이나 생수와 가스를 배달해 주고 수고비를 챙긴다. 이들은 특히 단지 내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좋아한다. 주로 한밤중에 담배나 술을 사다 달라고 이들에게 부탁하는데, 당연하게 낮 시간대와 다른 수고비가 지불된다. 동네 가게는 늦어도 밤 9시에는 문을 닫는다. 그러므로 밤을 새워 술을 마셔 가며 화투치기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기호품이 떨어지면 달리 방도가 없다. 이런 때면, 삿빰의 역할이 부각 된다. 밤늦은 시간에 가게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은 이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