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산 아래 상경하애하는 부자마을

마로면 적암리

2003-01-18     곽주희
오대중봉 시루봉은 동에서 내려오고 북으로는 구병산 드높이 솟아오른 아늑한 골짜기 적암마을 이루었네. 보은에서 오십리 동으로는 경상북도 도계 사기굽고 살았다고 예부터 사기막. 피난지로 적격이고 인심좋아 찾았던 곳. 마을입구 남쪽에는 아담스런 적암학교. 힘모아 땀흘리며 후손위해 세우고는 그렇게도 대견하여 풍물치는 적암마을. 서쪽산 등성엔 세계 정보통신의 산실 위성지구국 안테나가 접시처럼 우뚝 솟은 오늘도 구병산 찾는 원색의 등산물결. 이 아름다운 자연에서 풍요로운 인심모아 영원히 지키리. 우리마을 적암리

- 1992년 5월 건립한 적암리 마을자랑비 전문 -



도계마을, 구병산과 시루봉
보은에서 25번 국도를 따라 20여분 달리다 보면 경북 상주시 회북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도계마을 적암리가 나타난다. 감나무가 많은 마로면 적암리(赤岩里)는 보은의 동쪽 끝으로 경상북도 상주시와 접하고 있고, 서쪽과 남쪽으로 갈평리와 임곡리를 마주 대하며 북으로 내속리면 구병리와 사이에 구병산(九屛山 : 해발 876m로 아홉 개의 봉우리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고 붙여진 이름. 옛 문헌에는 구봉산(九峯山)이라고 기록. 산중턱에 약수가 샘솟고 있으며 옛 신선이 놀았다는 신선대,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옛 절도도 있다. 충북알프스로 유명, 등산객이 많이 찾아들고 있다)을 안고 있다.

또 상주군과 사이에는 시루봉(甑峯 : 높이 320m의 산으로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은 형국으로 보은의 4증(四甑) 팔항(八項) 동쪽에 있다하여 동증(東甑)이라고 함)을 두고 있어 갈평저수지와 시루봉, 구병산을 잇는 삼각형 안에 조용히 들어앉은 형국이다.


사기막과 적암
적암리 원지명은 사기막으로 조선 선조 때 이명백(1552∼1593, 탄부 구암, 호 한포재) 의병장이 상주, 중모, 화령 등지에서 의병을 모아 안동에서 왜적을 크게 무찔렀으며, 마로 적암리로 돌아와 왜군의 진로를 막으며 수차례 싸우다 중과부적으로 순국했다.
여기에서 의병들의 사기를 드높인 곳이라 해 ‘사기막’이라 불리기 시작했으며, 가마터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사기를 굽는 곳이라 ‘사기막’이라 명칭했다고도 한다.

적암리라고 한 것은 남쪽 도계에 있는 붉은 색깔의 두 개의 바위를 적바위라고 하는데 하나는 보은쪽에 있어 보은바위, 또 다른 하나는 상주쪽에 있어 상주바위라 부르고 있다. 즉 붉은 색의 바위가 있는 동네라고 해서 적암(赤岩)이라 했다고 한다. 적암리는 사기막이라는 안말과 옛날 주막이 있던 곳이라 주막뜸(현재 주유소와 적암휴게소)이라는 자연마을로 구성돼 있다.


상경하애하는 화목한 마을
95년 찾아간 적암리는 94가구 287명(남자 133명, 여자 154명)이 살고 있었으나 99년에는 87가구 232명, 지난해말에는 4개반 84가구 203명(남자 102명, 여자 101명)이 살고 있다. 주민 모두가 논농사와 고추·담배 등의 밭농사를 짓고 있으며, 한때는 대추마을로 유명했다는 적암리는 남달리 애향심이 강한 출향인사들의 적극적 지원과 마을 사람들의 근면함이 현재의 면내 부자마을을 이루게 된 근본이라 자랑하는 새마을지도자 신정식(32)씨.

65세 이상의 노인만 마을 인구의 1/3을 넘는 65명인 적암리는 구병산의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이 장수의 비결이라 말하는 노인회장 강병천(69)씨는 65명의 노인회원들이 마을 청소를 하는 등 모두 활력이 넘친다고 자랑.

지난 70년대 절미운동을 시작으로 현재 빈병 등 재활용품 수집활동 등을 통해 기금을 모아 매년 봄·가을 노인잔치를 열고 있고 경로효친과 상경하애의 화목한 가족같은 분위기가 넘치는 행복한 마을은 만들기 위해 모든 주민들이 노력하고 있는 적암리 부녀회(회장 유춘자). 매 3년마다 입찰을 보고 있는 적암휴게소와 주유소에서 나오는 마을기금으로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를 개최하고 마을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 등 윤택한 마을이라고 자랑하는 김봉현(38) 이장은 마로면 이장협의회 총무도 맡고 있다.


문화와 전통이 숨쉬는 마을
각종 문화유적과 전통을 지켜가는 문화마을 적암리. 적암리는 100년 넘게 매년 정월 대보름 전날에 살아있는 돼지를 가지고 산신제를 지내는 등 옛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위성지구국에서 안말로 넘어오는 농로옆에 수령 250년을 자랑하는 느티나무가 묵묵히 마을을 지키고 있는 적암리.

적암리에는 2개의 청자요지가 있다. 적암리 서쪽 백운동천(白雲洞天)이라는 글씨가 있는 전진바위 북쪽 40m정도 구릉에 있는 무너진 요지와 사기막이라 부르는 안말 민가 뒤에 남아 있는 요지로 주변에는 그릇을 굽기 위한 갓바퀴와 눈바퀴 자국이 있는 순청자에서 백자조각까지 있다.

또한 보은현감 여현 장현광 선생과 관련된 재미있는 속곳바위(치마바위) 전설과 시루봉 중턱 절벽에 조그만 구멍이 뚫린 바위(쌀바위)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적암리 일대에는 큰 장수(인물)가 날 것이라는 전설과 함께 일제시대에 혹은 왜란때 이여송이 바로 이러한 정기를 끊기 위해 새의 목울대 부분에 해당하는 달걀봉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고속도로·등산객 골머리
적암리의 자랑으로 우뚝 서 있는 구병산.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적암리를 찾는 일부 몰지각한 등산객들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 또한 마을 중앙을 뚫고 지나가는 청주-상주간 고속도로도 주민들의 불편거리 중 하나다. 등산객이 산에 오르면서 버리는 쓰레기, 또는 산에서 가지고 내려온 오물을 마을 곳곳에 쌓아 놓는 등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고속도로가 마을 중앙을 가로질러 놓이게 돼 반대도 했으나 이미 결정난 일로 주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마을 농지의 1/3이 고속도로 부지로 속해 버려 앞으로 농사지을 땅도 많지 않아 걱정이라는 주민들이 말이다. 고속도로 노선이 마을 뒤쪽이나 휴게소 앞 하천쪽으로 통과됐어야 한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애향심을 발휘한 출향인들
적암리 입구에는 3개의 비석이 있다. 3개 모두 한사람을 기리는 마음을 담고 있다. 보은장학회를 설립한 고(故) 김재걸 선생을 기리는 의성 광산김공제걸 송덕비(1990년 6월, 김재걸이사장 송덕비 건립위원회)와 의성 김재걸 교육 공로비(1973년 9월, 적암초등학교 학부형 일동), 광산 김공재걸 선덕비(1989년 2월, 적암리 주민일동)다. 고 김재걸 선생은 적암리 출신으로 마을에 음양으로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또한 고 김재걸선생의 막내 동생인 김재명씨는 3000만원을 들여 마을 노인정을 건립해 주는 등 남다른 고향 사랑을 펼쳤다. 이밖에 출향인으로 전 보은지구 공화당 사무총장을 지냈던 박진규씨와 서울에 있는 윤태영씨 등이 마을을 위해 도움을 아끼지 않는 등 영원한 적암리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자연친화적 마을 조성 숙원
적암리 주민들은 푸른 산과 맑은 물을 해치지 않는 자연친화적인 마을 조성을 바라고 있다. 내속 구병리는 황토사우나, 황토방갈로 등 구병산 개발 계획에 따라 발전하고 있으나 실제 등산객이 많이 오고 있는 적암리는 소외되고 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그리고 농로포장이 아직 안돼 있어 농사를 짓는데 불편하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