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소중하게 가꾸는 것, 당연한 일 아닌가요?”
인기 최고의 피서지, 속리산면 만수리 이종섭 이장
“좁은 골짜기에서 농사지으며 살아가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지만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라는 속리산면 만수리 이종섭(70)이장의 말이다.
그렇게 살아서 그런지 나이 70세가 믿기지 않는 얼굴이다. 늘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을 접하고 살아 그런지 나이에 비해 무척 젊어 보인다.
이종섭 이장이 이장을 맡아보기 시작한 것은 2010년 1월부터로 올해로 13년차에 접어들었다.
이장을 그만두려 해도 맡아볼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보지만 일 하나는 똑소리 나게 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말이다.
실제로 이장은 맡아보면서 집집마다 특색있는 간판을 걸었다. 마을 곳곳에 작으마한 화단을 조성하고 400m에 이르는 꽃길도 만들었다. 마을 입구에는 마을 이름이 쓰여진 커다란 마을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누가 봐도 웅장하고 멋스럽다.
마을 한편에는 아담한 마을회관이 있다. 마을회관을 지을만한 땅이 없어 지난해에 지은지 20년이 넘은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이 일 들은 이종섭 이장이 수년에 걸친 ‘행복마을가꾸기사업’을 따내 5억 3500만원을 투입해 일구어낸 결실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차가 통행하기 어려운 마을길을 넓히기 위해 도로 확·포장사업을 승인받아 공사가 추진되고 있다.
4km에 이르는 만수계곡에 피서객과 관광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다.
농사지으랴 남경가든을 운영하랴 내일도 바쁜데다 이장일을 하다 보니 수시로 행정복지센터(면사무소)에 나가야 하니 때론 숨돌릴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이종섭 이장의 출생지는 만수리가 아니라 바로 옆동네 삼가1리다. 오래전 작고한 고 이복규, 고 황의덕 부부의 6남 3년중 여섯째로 태어난 이 이장은 삼가저수지(비룡저수지)가 조성되면서 집터가 수몰되어 만수리로 이사했다.
당시 누구나 그랫듯이 가정은 어렵기만 했다. 더구나 산골짜기여서 부칠 땅이 없어 가난은 이어졌다.
삼가초를 졸업한 이종섭 이장은 가난으로 인해 중학교로 진학을 하지 못하고 부모님일을 도와야만했다. 어린 나이에 4~5년을 집안에 얽매여 살던 그는 “나가야 산다”고 결심하고 17살이 되던 해에 상경했다. 섬유업계에서 어려서부터 배운 근면 성실함으로 일했다. 그 노력은 인정받아 승승장구했다. 돈도 벌었다. 성실함, 밝은 대인관계는 주변에 알려져 43년전인 1979년 친정이 대전인 부인 박춘실(67)여사를 만나 가정을 이뤘다.
그 이듬해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를 맞이해 준 곳은 법주사였다. 귀향한지 2년후인 1982년 법주사에 들어가 대외업무에 충실했다. 모르는 승려가 없었고, 많은 불자들이 법주사를 찾을 수 있도록 묵묵히 뒤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그러한 노력은 인정받아 교무과장으로 일하면서 10년전인 2012년 법주사에서 물러났다.
그 세월속에 딸셋을 낳아 모두를 출가시켰다. 연년생인 이혜진(44) 이영진(43) 이경진(42)이 그들이다.
이종섭 이장은 이제 농사일에 매진하고 있다. 3000평, 산골짜기 만수리에서는 광작이다. 이중2000평에는 복숭아를, 800평면적에는 대추, 나머지 200평에는 채소 등 갖가지 작물을 심어 식당의 재료로 사용한다.
이종섭 이장은 “죽어라 하고 농사지어도 소득은 3,000~4,000천만원인데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손에 남는 것은 별로”라며 “하지만 동네 사람들과, 이웃 마을 사람들과 어울렁 더울렁 살아가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참맛”이라며 웃음 지었다.
한편, 44세대 55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곳 만수리는 보은지역 최고 피서지로 알려진 서원계곡에 버금가는 만수계곡이 있는 관광명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