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장안마을과 북실마을 이야기

2022-08-25     박진수 기자

보은군에 들어서면 자연환경이 정겨워진다. 속리산에서 뻗은 크고 작은 산들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높지도 않고 가파르지도 않은 작은 봉우리 들이 속속 나타난다. 산을 휘돌아 들어가면 넓지 않은 경작지가 나오고 다시 작은 산들이 계속된다. 그러다가 우뚝한 속리산 연봉이 이어져 장관을 보여준다.
속리산은 해발 1.058m의 고봉 천왕봉과 문장대를 비롯, 입석대와 경업대 등 1,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우뚝한 산세를 자랑한다. 이 봉우리들은 깊은 골짜기가 줄기마다 감싸고 있고, 울창한 숲이 펼쳐져서 거대한 암석 봉우리의 산악마를 받쳐주고 있다.
보은의 중앙부를 흘러가는 보청천은 북쪽의 구룡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면서 보은분지와 삼승분지를 이루고 다시 동쪽으로 흘러가서 탄부면 평지를 형성한 뒤에 구병산과 속리산을 맞닿는 자락을 흘러 남류하는 삼가천을 합치며 남쪽으로 물길을 돌려서 옥천으로 빠져 나간다. 
장안면 장안마을은 보은읍에서 경상북도 상주쪽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았다. 큰길에서 삼가천을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서원계곡 초입에 옥녀봉이 오뚝 솟아 있는데 그 아래  산비탈에 있는 큰 마을이었다.
1893년 봄 이 곳 장안마을에는 수많은 동학도들이 모여들었다. 보국안민과 척왜양창의 깃발을 높이 세운 장내리집회가 열린 것이다. 이 집회 장소에 지금 돌성 자취가 남아있다.
지금은 서원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이 직선으로 넓게 포장되어 보기에도 시원하다. 백여년전에는 삼가천이 옥녀봉쪽으로 휘돌아 흘러갔다. 위에서 보면 마치 삼각형의 땅이 냇가에  이웃해 있는 것처험 보였다고 했다. 가파은 산에 이어진 비탈밭은 비가 와서 땅이 마르면 건조했기 때문에 “달빛에도 가뭄이 든다”는 곳이다.
이 비탈밭은 대추나무밭이었다. 대추나무는 나이가 얼마나 되는 지 이름드리 되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서원계곡에서 지금은 관기로 가는 큰 길에 이르기까지 대추나무가 많아서 오래전부터 대추골로 이름이 났다.
보습날처럼 쟁기 모양같이 생겼다고 또 보습산으로 불리는 옥녀봉 아래의 삼각형 땅에 바로 동학집회의 증거인 돌성의 자취가 생생한 곳이다. 
옛 “보은군지는 다음과 같이 그 사실을 전해준다. “개천 사이에 델타 평지 약 500평에다 높이가 반장 쯤되는 돌과 흙담을 쌓아 출입문을 세우고 대부대가 그 안에 농성 할태도를 취하여 주문을 외우며 질서정연하게 행동하였다. 이곳은 보은에서 법주사로 가다가 상주로 가는 갈림길에서 약4km로 되는 곳이다.”
지금은 그 흔적찾기가 어렵지만 이 돌성을 왜 여기 쌓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집단시위를 한 목적이 무엇이었는가?
보은에는 또 가볍게 넘겨 보아서는 안되는 아름다운 꽃이 있다. 봄이 오면 산골짜기에 흐드러지게 피는 진달래이다. 보은읍 북실마을에 피는 진달래꽃은 더욱 그렇다. 왜 그런가?
보은읍에서 속리산으로 가는 길목에 유명한 삼년산성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데 산성쪽으로 들어가지 말고 곧장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국도의 건너편에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이 깊숙이 들어가는 길은 북실마을에 이른다. 북실 마을은 모두 12마을로서 작은 야산을 가운에 두고 큰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 안에 위치하여 있다. 
이 작은 야산과 둘레의 큰 산에서 진달래가 피어난다. 군데군데 피어나는 진달래 꽃무더기는 봄의 빛깔을 환하게 밝힌다. 붉은 꽃은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 온 것을 알리는 전령이지만 갑오년에 이 땅에서 희생된 이들의 마지막 함성이기도 하다. 바로 북실은 북접 농민군이 마지막으로 크게 피해를 입었던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장안면 장안리 돌성과 북실 진달래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보은이 동학농민혁명의 성지임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