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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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9     최동철

 요 며칠 간간히 내린 단비로 갈증은 면했지만 여전히 가뭄이다. 우리 마을은 그나마 커다란 저수지가 두 곳이나 있어 논물대기 등 영농에는 큰 문제가 없다. 다만 타들어가는 텃밭 작물이 안쓰러워 상수를 뿌려주니 물탱크의 상수가 고갈되어 정작 식수는 ‘쪼르륵’이다.

 이장은 마을 방송망을 통해 “식수를 영농에 사용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집안 텃밭작물이 누렇게 변하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는 모양새다. 또 내 돈 내고 내가 상수를 사용하는데 어떠냐는 아전인수식 배짱심보도 작용하는 듯하다.

 사실, 가물 때일수록 더욱 많이 필요하고, 사막에서는 금은보화보다 더 귀중한 것이 한 모금의 생수라 할 수 있다. 지구상에서 물은 가장 흔하고 또 가장 귀한 생명의 원천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물과 관련된 화제가 많이 전해진다.

 보은군 민속 문화에 ‘흰돌물다리기’가 전해 내려온다. 산외면 백석리(일명 흰돌부락)는 속리산 줄기에서 뻗은 마을 뒷산 장구봉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두메산골이다. 하지만 마을에는 풍수지리상, 뒷산 유방혈의 두 젖무덤에서 발원한 두 곳의 큰 샘이 있다.

 식수와 생활용수로 이제껏 이용되는 이 석천수는 300여년이 넘도록 물 한번 마른 적이 없다.  물맛 좋고 수량 풍부한 탓에 이웃 마을, 산외면 장갑리와 속리산면 백현리의 시샘을 받았다. 그것이 매년 정월 물의 근원을 빼앗아가려는 ‘물다리기(물 빼앗기)’ 민속놀이로 발전했다.

 빼앗아간 쪽의 축제와 빼앗긴 쪽의 슬픔으로 반복되는 이 흰돌물다리기 놀이는 충북민속예술연구위원회에서 1985년, 끊긴지 50여년 만에 원형을 재현했다. 그리고 1987년 제2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허나 지금은 또 다시 중단된 상태여서 아쉽다.

 지구 반대편 태평양을 끼고 길쭉하게 생긴 나라 칠레에서는 요즘 13년째 대가뭄으로 수자원이 붕괴 직전에 직면해있다. 특히 칠레는 ‘물 권리’를 사적 소유권으로 인정한 헌법을 가진 세계 유일의 나라다. 대동강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처럼 그 나라 대통령이 그렇게 했다.    

 1990년까지 무려 17년간 집권했던 독재자 피노체트 대통령은 물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음인지, 당시 수자원 관리 시스템을 완전 민영화했다. 물 배당권을 주식처럼 사고 팔수 있게 만들었다. 물이 곧 돈이 됐으니 물 흐름을 막거나 빼앗고 빼앗기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 됐다. 

 산티아고의 세계적 관광지였던 아쿠엘로 호수는 물이 모이지 않아 지도상에서 완전 사라졌다. 호수로 유입되는 물에 대한 권리가 법적으로 주변 지주 등 민간인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호수와 연결된 강 지류의 물길을 ‘저만 돈 벌겠다’며 토지주가 물길을 막아버린 탓이다.

 절박한 가뭄 속에서도 공익을 우선 생각하는 인지상정의 물 절약정신이 아쉬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