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있기에…

김중규(보은고 교장)

1997-09-13     보은신문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는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향한다는 말로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흔히 고향을 어머님의 품과 같이 아늑하고 훈훈하다고 표현한다. 언제나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고 서럽고 긴타향살이에도 항상 기댈 수 있는 안식처로 마음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중추절이 돌아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위만 같아라」하는 말이 있듯이 추석은 설과 함께 가장 비중이 있는 명절이며, 의미가 있는 날이다.

설날이 한 해를 시작하는 날로서, 마음으로 기리는 명절이라면 추석은 봄부터 여름까지 한 해의 농사를 마치고 하늘과 조상님께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며 기리는 일종의 제천의식 내지는 제사의식일 것이다. 이 좋은 명절에 해마다 민족의 대이동이 이루어진다. 올 추석에는 3천만의 이동 인구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하는 것일까? 바로 고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고향에 대한 생각이 있어도 가지 못하고 마음의 안식처로만 여기지만, 예로부터 명절때 만큼은 고향에 가야 한다는 귀성본능이 작용하였다.

예외없이 우리 보은에도 해마다 명절이 되면 많은 출향인들이 고향을 찾아 속속 모여든다. 지나간 일이 하나 떠오른다. 십년도 넘은 꽤 오래된 이야기다. 모교의 교정에서 매년 동기 동창들의 모임이 있었다. 정식으로 발족한 동창회의 모임이 아니고, 서로 계를 모은 동창들이 뜻을 모아 1년에 한번 모여서 함께 운동도 하고 서로 안부와 소식을 전하면서 친목을 도모하자는 데 그 모임의 목적이 있어서 고향에 있는 친구들 외에도 대전, 청주, 서울 등 외지에 나가 있는 친구들도 꽤 모여서 거의 100여명 정도가 해마다 모였었다.

그러던 어느 해, 몇몇 객지에서 온 친구들이 불평 아닌 불평을 털어놓았다. 「오랜만에 고향에 한번씩 오면 고향에 있는 친구들이 술대접 한번 제대로 하는 것을 못 보았다」라는 것이었다. 고향에 있는 우리들은 좀 머쓱한 입장이 되어 별로 말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야 이 사람들아! 생각이 틀렸어,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한테 자네들이 술을 사야 되는 거 아닌가? 그저 고향을 떠났다가 가끔 들리면 무척이나 출세한 양, 고향을 깔보고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을 경시하는 풍조가 있단말이야」하는 큰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평소에도 바른 말 잘하고 곧게 살아가는 선배가 그곳에 함께 있다가 일갈하는 소리였다. 지나간 일을 떠올리면서 명절에 고향을 찾아 보은에 오시는 분들께 당부의 말을 하고 싶다. 마음속에 간직하는 안식처로서의 고향도 소중하고 중요하다면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꼽히는 우리 고향 보은을 좀도 발전하고 미래가 밝은 고향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하고. 그냥 다녀가는 고향이 아니고, 그저 명절이니까 와서 어깨짓만 하고 떠나가는 고향이 아니고 보은에서 생산되는 배추 한 포기라도, 무우 한 뿌리라도, 밤 한 톨이라도 팔아주고 아껴주는 보은인이 되었으며 한다.

고향의 곳곳에서 고향을 지키며 고생하는 보은인이 있고, 객지에 나가서 항상 고향 보은의 발전을 위하여 마음써주는 출향인이 많을 때 우리의 고향 보은은 더욱 살찌리라고 생각한다. 좋은 명절이 되어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북에 고향을 두었거나 수몰지역 출신의 실향민들이다. 그들은 명절이 되면 더욱 서글퍼진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명절이 되면 신바람이 난다. 비록 오가는데, 힘은 들어도 그날이 또 기다려진다.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해 주고 포근히 감싸주는 고향이 있기에…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