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마을을 승화시킨 부산 사하구 ‘감천마을’

‘별 하나의 추억을, 별 하나의 감천을’ <기획>붕괴되는 농촌, 그 대안을 찾아서

2021-05-13     보은신문

글 싣는 순서
1. 미술로 마을을 발전시킨 사하구의 ‘감천마을’
2. 삼국유사로 재생을 꿈꾸는 군위군 ‘장군마을’ 
3. 선비순례길로 마을 재생 시작하는 안동 ‘맹개마을’
4. 농촌재생의 최우수 마을!! 함안군 ‘장암마을’
5. 예술로 농촌재생 추구하는 홍성군 ‘홍천마을’
6. 인구절벽 보은마을 재생, 있는 것 활용해야
 

「우리 보은군은 1965년 11만3천825명의 인구를 기록했으나, 현재는 3만2천명이라는 인구절벽시대를 맞고 있다. 이로 인해  군민들은 절박한 위기위식을 느낌과 동시, 이를 타개할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군민들의 위기의식과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농촌재생에 성공한 선진지를 찾아 우수사례를 소개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보은을 찾아오고 지역경제에 활력이 불어오는 미래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국관광 100선 각광받는 감천문화마을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문화마을협의회(회장 손판암·82)에서 운영하는 ‘감천문화마을’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감천문화마을’은 1950년대 6.25 피난민의 힘겨운 삶의 터전으로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민족현대사의 한 단면과 흔적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산자락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계단식 집단 주거형태와 모든 길이 통하는 골목길 미로(迷路)가 이를 증명하며 과거의 고통과  오늘의 아름다움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2015년 이후 4회 연속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는 등 관광명소로 발전을 거듭하며 있다.  실제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2011년 3만 명이던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2019년 308만명을 기록했으나 2020년에는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110만여명에 그쳤다.
손판암 회장은 “코로나19가 발생하지 않고 추세가 지속됐다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500만 명을 넘어섰을 것”이라고 현 시국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감천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미로미로(美路迷路)
 감천마을은 판잣집과 초가집에 40여세대가 사는 빈촌이었다.
 그러던 것이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피란민이 줄을 이었고 그 중에서도 태극도 교인들이 감천2동에 자리하면서 마을다운 마을이 형성해 1980년대까지는 2만명 이상이 이곳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태극도 창시자가 사망한 후 교세가 약화되고, 주민들의 후손들이 출가하며 현재 거주 인구가 절반 이상 줄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부산시 곳곳에 고층빌딩이 들어섰지만, 감천문화마을은 옛 모습 그대로 였다. 6.25전쟁이 끝난 1957년, 이곳저곳에서 들러온 주민들은 마을을 가꾸기로 하면서 ‘마을의 모든 길은 연결돼야 할 것’과 ‘뒷집의 조망권을 막지 말 것’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합의해 제시하고 이를 실천했다.
 조망권을 막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만 심한 곳은 경사도가 70%에 육박할 정도여서 집을 넓고 높게 지을 수 없었고 한 가정의 주택 면적은 7~8평에 불과해 그 경사도에 집을 지으려면 조망권을 막으라 해도 막지 못한다.
 이로 인해 감천문화마을 주택은 앞집에 뒷집이 가려지는 집이 없으며 미로같은 마을길과 주택은 어디로나 통하는 좁고 가파른 골목길과 계단식 주택으로 조성되어 마을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마을안으로 들어가면 그 길이 얼마나 복잡한지 처음 가는 사람은 미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간곳을 또 가고 또 가기를 반복해 이곳 사람들은 이곳을 미로미로(美路迷路)라 부른다. 여기에서 감천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우러진 역사·문화·미술 ‘박진감 넘쳐’
 마을길과 주택 곳곳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그림에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다양한 도시와 동화속 이름이 붙어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의 모양에 따라 다양한 별칭이 붙여진 것이다.
 페루의 고산 국립공원 맞추픽추와 닮았다고 해서 ‘부산의 마추픽추’, 그리스 지중해의 섬마을 산토리니와 비슷하다 해서 ‘한국의 산토리니’, 경계를 따라 가로로 늘어져 있는 집들이 기차가 연결된 모습 같다고 ‘기찻집 동네’, 성냥갑을 쌓아 올린 동화 속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고 ‘블록마을’ ‘레고마을’이라 부른다. 
  감천문화마을이 문화와 예술에서도 박진감이 넘쳐나자 여행객이 늘어나면서 마을에도 변화가 생겼다.
 2008년 부산 동서대학교 이명희 교수의 “집에 색을 입히고 그림을 그리자”는 제안을 마을에서 받아들여 이를 시행에 옮긴 결과다.
 이를 위해 감천문화마을에서는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마을예술 프로젝트 공모사업’에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로 응모해 선정되면서 미술작가들을 위한 다양한 창작 공간이 들어섰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게 더욱 다양한 체험과 볼거리가 조성됐다. 스치고 지나가는 일상의 생활공간에 예술의 옷을 입혀 예술 친화적 관광지로 부상한 것이다.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예술가의 집도 눈길을 끌고 있다.
김인철 건축사가 설계한 갤러리 ‘색즉시공’, 송효상 건축사가 설계한 ‘독락의 탑’, 조성룡 설계사가 설계한 ‘별계단집’, 프란시스코 사닌이 설계한 ‘공공의 방’,이 그곳들이다.
 이곳에는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있고, 이곳을 찾는 이들이 종이벽화 그리기, 나만의 노트만들기, 천연염색체험, 판화제작, 도자기만들기, 문학, 회화 등을 보고, 즐기고, 체험할 수 있다. 발길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발길 유혹하는 곳곳의 예술작품
사람들이 감천문화마을을 찾는 이유는 또 있다.
담장벽, 지붕, 옥상, 등 곳곳에 그림, 조각, 조형물 등 무려 56점의 예술작품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나인주 작가의 ‘어린왕자와 사막여우’라는 조각상을 만나는 사람들은 100이면 100,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골목길에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생기 넘치게 그려놓은 진영섭 작가의 ‘골목을 누비는 물고기’ ‘꿈틀거리는 마을’ 머리는 사람 몸은 새로 조형물을 만들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새처럼 하늘을 날아 보고픈 마음을 담은 ‘사람 그리고 새’ 마을을 위해 일해 온 주민을 표현한 ‘감천의 영웅’ 등이 곳곳에 펼쳐져있다.
 감천문화마을을 방문하면 감천문화 마을을 소개하는 ‘감천문화마을 스탬프지도’를 입장료라 생각하고 2,000원에 구매한다. 여기에는 이곳의 중요지점 12곳에서 방문을 입증하는 스탬프를 찍는 스탬프지도가 들어 있다.
 사람들은 이 작품, 저 작품을 보느라 이 스탬프지도에 직인을 받는 것을 잃어버린다. 다시 돌아가 받으려 하지만, 지나온 그곳은 미로여서 다시 찾아가기가 어렵다.
 젊은 한 커플은 “몇 번을 와서도 미로여서 스탬프지도를 완성하지 못했다”면서 “이번에는 꼭 완성시키기 위해 왔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여기에서 얻어지는 수익금은 무료셔틀버스인 ‘감천행복버스’ 노후주택에 거주하는 주민ㅇ르위한 ‘집수리사업’ 마을주민들의 공공목욕탕인 ‘ 감내 작은 목간’ 어르신들을 위한 ‘감내 빨래방’ 운영 등에 사용하고 있었다.

 

김문생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충북 증평으로 피난 왔다 태극도와 인연이 되어 이곳에 왔다는 감천문화마을 김문생(78) 문화예술단장은 “이곳은 피란민들의 피난처로 어려웠던 고통의 나날들이 곳곳에 숨어있지만 주민들의 노력으로 그 어디에도 고통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고통을 이겨내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목표”라며 “별에 사랑과 추억이 있듯이 마음에는 감천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겠다.”고 감천을 자랑했다. 사람들이 왜 감천(甘川)을 찾아오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기획취재팀 나기홍·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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