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자리

김중규(보은고등학교 교장)

1997-08-23     보은신문
아버지! 항상 울타리와 같은 느낌과 함께 한편으로는 어렵고 믿음과 권위가 느껴지는 존재이다. 아버지에 대한 호칭도 세월과 시대가 바뀌면서 많은 변화되고 다양해졌다. 좀 유식한 호칭으로 자기의 아버지를 나타내는 호칭으로 가친(家親), 엄친(嚴親), 엄부(嚴父), 가엄(家嚴), 노친(老親), 부주(父主) 등이 있고, 순수한 우리말로는 아버님, 아버지 등이 있다. 또한, 남의 아버지를 호칭할 때 춘부장(春府丈), 춘장(春丈), 춘당(春堂), 대정(大庭)등이 있다.

근래에는 어린이나 젊은층에서 아빠라는 호칭이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젊은 여성들이 자기 남편의 칭호로도 사용하고 있어 뜻있는 어른들로부터 질책을 받기도 한다. 호칭이야 어찌 됐든 그 말뜻에 존경과 신뢰와 권위와 친근함이 깃들어 있다면 커다란 문제는 없으리라 본다. 옛날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부장(家父長)적인 가족의 구성이나 가족제도의 생활패턴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가정에서의 위치나 존재는 대단했다. 모든 일이 아버지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아버지의 의사에 따라서 가정사가 좌우되며 특히 자녀들은 거의 무조건에 가깝게 복종해야 되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위치나 권위가 점차 떨어지고 축소되어 가는 느낌이다. 어느때부터인가 가정의 모든 권한이 어머니에게로 옮겨가고 가정의 모든 일이나 자녀들의 교육 문제까지도 어머니에 의해서 좌우되고 아버지는 그저 밖에 나가 직장에서 돈이나 벌어오는 존재로 하락하고 말았다. 그러던 아버지들이 이제는 직장에서 조차 찬밥이 되어가고 있다. 명퇴니 강퇴니 하여 윗사람의 눈치를 보아야하고, 그러다 보니 양어깨에서 힘이 빠져 나가게 마련이다.

아버지의 설 자리가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지난 달이 나에게는 커다란 시련의 시간이었다. 연로하신 아버님께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기 때문이다. 문론 연세가 85세이시기 때문에 노환으로 입원하실 수도 있겠지만 불행히도 낙상을 하셔서 입원을 하셨다. 워낙 상처가 깊고 커서 중환자실에 까지 들어 가셨었는데 한달이상 병원에서 가까이 모시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신께서 젊으셨을 때는 하늘보다 더 높으신 존재이셨과, 나의 거울이고 기둥이셨던 아버님. 그러나 이제는 그저 힘없이 투병하고 계시는 일개 노옹에 불과하신 몸, 애처롭기 한이 없다. 나는 한달간의 간병생활이 조금도 힘들다거나 어렵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다만, 아버님의 안쓰러운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지고 하루 하루를 힘들어 하시기에 가슴이 저렸다.

다행히 거의 완쾌되시어 퇴원을 하셨고, 처음 입원하실 때, 한달이라도 좋으니 퇴원하셔서 생활하시다가 돌아가시게 해달라고 의사에게 애원할 때와는 달리 가슴 뿌듯하게 눈시울을 적시며 모시고 나올 때의 마음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평상시 옆에서 모시면서 생활해 오던 나로서는 정말로 노쇠하신 아버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요즈음 각계 각층에서 아버지들에게 힘을 주자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어려운 현실사회에서 점점 소외되어가고 힘을 잃어가는 우리 주변의 아버지들에게 옛날과 같은 신뢰와 권위를 찾을 수 있는 힘을 주어 튼튼한 가부장 중심의 가정을 이루러 화목한 가정을 가꾸는 것이 좋겠다. 세상의 아버지들이며! 힘을 내세요. 아버지 파이팅!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