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조종 ·남자는 통치
이관모(본보 편집인)
1997-05-31 보은신문
미안하게도 이 들의 내려간 바지 안에 비춰지는 꼴은 노팬티도 있었으니, 일을 당한 쪽에서는 부끄러워 어쩔줄 모르는 모습을 가지고 두고두고 놀림을 당한 사람도 있었다. 사실 이 당시에 팬티라고 입고 다녔던 것이 광목에 푸른 물감을 들여 만든 것이 고작이었는데 볼품이 엇고 잘못 앉아 있으면 놀림거리 되기가 일쑤였다. 더구나 화장지가 없어 뒷마무리가 곤란했던 것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오게 한다.
빨래 역시 냇가에 가서 두두리며 때를 뺏기에 고무줄인들 배겨날 수가 없었다. 요즘의 팬티문화는 완전 패션으로 가고 있는데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들까지도 비싸고 요상스러운 것들을 선호하고 있다. 팬티는 보아 줄 사람이 정해져 있는데 굳이 패션화가 되어야만 했을까에 의문이 가지만 그 나름대로의 속셈이 있는 듯하다. 「하나를 위한 이중주」라고 붙이는 젊은 세대의 팬티문화는 다분히 「Na-rcissism」적 행동, 즉 하나인 상대에게 보임을 제공하고 스스로도 만족을 느끼는 자기도취라고 하는 표현이 맞으려나 모르겠다.
「여자는 조종해야 하며, 남자는 통치해야한다」여성의 팬티가 미를 중요시한다면 남성의 팬티는 통치를 위한 기구가 되어야한다. 외박을 하고 온 남편과 싸우는 부인은 외도의 증거로 팬티를 제시했던 얘기는 남자들 사이에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한 친구가 외박을 하기 위하여 「갖은 인물 죽이기」를 계속해야 했다. 한번은 회사의 전무님 아버지 초상에 다녀와 새벽에 태연하게 들어간 남편에게 팬티가 거꾸로 입혀진 것을 본 부인의 추궁에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다시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러나 부인은 거꾸로 이놈의 버릇을 꼭 해결하겠다고 선언하고 달력에 있지도 않은 사람을 얼마나 죽이는지 두고 보자고 별른다. 한번은 친구의 장모 초상집에 들렸다 온 남편을 추궁하기 시작했는데 남편은 당당히 실수 한 것이 없는데 왜 성화냐고 따져 묻자 「오늘 아침에 팬티를 일부러 거꾸로 입혀줬는데 왜 지금은 바로 입고 있느냐」며 따져 묻자 할 말을 못하고 말았다.
혼쭐이 난 친구는 더욱 조심해야지 하며 또 한번의 외박에는 1년전에 죽였던 사람(?)의 초상집을 둘러대다가 달력의 메모를 증거로 보여주고 싸움 끝에 버릇을 고친 얘기는 코믹하기보다는 세태를 반영하는 듯하다. 보은 읍내의 옷 가게에도 버젓이 남녀의 팬티를 진열하고 오고가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게다가 섹스숍까지 생겼으니 눈요기로는 더 이상 할 것이 없지만 그래도 야한 선전이 장사가 잘 된다는 얘기는 우리들의 성문화가 일반 보편화되는 듯 싶다.
아무튼 팬티의 가격이 높아지고 고급화되고 있는 실정에서 우리가 지켜야만 할 문화의 한가지는 무너져 가는 성문화를 가족 중심으로 지켜야한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자식들이라도 과년한 딸들은 감히 빨을 팬티를 아무 곳에나 내어놓지 못했으며 빨래 후에도 아무 곳에 걸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만국기처럼 아무 곳에 건다고 해도 말 한마디하는 삶이 없다.
예전 같이 팬티도둑이 없었졌는가 모르겠지만 적어도 부끄러운 부분은 감춰지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국민의 미덕이 아니었나 기억되는데 이러다가는 조금 더운 날이면 모두 벗어 던지고 다니는 날도 멀지 않았구나 예상된다. 하기야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머니들이 젖가슴을 내어놓고 다녔고, 아기들에게 어떤 장소에서든지 젓을 물렸는데 지금은 양반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때와는 질 적으로 틀리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물론 성인의 경우 팬티는 보아주는 사람이 꼭 정해져 있어야만 되는데 보아 줄 사람이 선택해 주는 팬티가 인기가 좋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큰 기업의 교육장에서 힘든 교육을 마치고 나온 교육생들에게 회사에서 일곱 색깔의 팬티를 선물하였는데 이 것을 집에 전달한 남편들의 한결 같은 얘기는 「효과 만점」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변화해 가는 팬티문화에 제동을 걸고 싶은 마음이나 팬티의 상술이 우리네 밖혀 있는 기본적인 윤리를 한꺼번에 삼키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플 뿐이다. 그렇다고 기막힌 상술이 모두 이기는 것은 아니다. 자기 도취가 도에 지나치면 허상이 보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 많이 투자를 할 경우 자칫 정신 건강을 헤칠 수도 있다는 경고도 있다는 사실이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