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 골동품 고향에 기증 할 터

골동품 김응두 수집가

1997-05-10     보은신문
◇ 이관모 대표이사 : 집에 와서 이처럼 많은 골동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왜 이런 오래된 생활 요품들을 모으고 있는가?
◆ 김응두씨 : 조상들의 정서와 손때가 묻어 있는 생활 용품이나 민속자료들을 수집하고 이것을 아끼고 관리하는 동안 조상의 얼과 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비롯 생활용품들이지만 예술적 가치가 충분한 물품들이 너무나 많다.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그림과 조각 섬세하게 그려져 있는 생활용품을 보며 조상들의 지혜와 삶의 풍요함을 느낄 수 있고 그런 것이 좋아 30여 년 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런 골동생활용품들을 수집했다.

◇ 이 : 이런 골동생활용품들은 문화적 역사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가?
◆ 김 : 물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지금은 박스에 싸여 있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도 몰라 제 값어치를 발휘하지 못하지만 진열대에 제대로 모양을 내어 전시하면 틀리게 보인다. 나도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런 골동품에 대한 고증 할 실력 정도는 된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내가 소장하고 있는 물품 중 상당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값을 따져 가며 그 동안 수집을 해 온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골동품들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조상들이 살던 각기 그 시대마다 원초적인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골동품들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 여기에 만족 할 뿐이다.

◇ 이 : 대우전자에 다니고 있는데 회사 일도 바쁠 테고 이런 수집 활동을 이해 못하면 가족들의 반대도 있었을 텐데 어려움도 없었는가?
◆ 김 : 먼저 가족들이 모두 이해해 주고 응해준다는게 다행이다. 내뜻을 따라 주는 게 고마울 뿐이다. 그리고 직장 동료들은 내가 이런 골동품 수집활동에 심취되어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가급적 직장에는 피해를 안 입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려고 노력해 왔다. 언젠가는 나의 이런 옹고집스런 골동품 수집활동을 이해해 주고 그 가치를 인정해 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 이 : 여기에는 풀어 본 물품은 일부에 불과 한 것 같다. 얼마나 소장하고 있는가?
◆ 김 : 대형트럭으로 한 트럭 분은 넉히 될 것이다. 여기 풀지 않은 상자 속에는 삼국시대의 토기를 비롯 고려 때부터 이조 시대와 근대까지 각종 생활용품과 골동품을 갖고 있다.

◇ 이 : 언제부터 수집을 시작했나?
◆ 김 : 71년도 서울에 처음 올라와 시작했는데 대충 3천여 점으로 추상된다. 등잔은 내가 자신 있게 국내에서 최고라고 자부할 만큼 수집했다. 고려 때부터 이조를 거쳐 근세에 이르기까지 있는데 자기와 철물, 옹기 그리고 나무로 만든 것까지 1백50점 정도로 다양하다.

◇ 이 : 최초로 수집한 물건은 무엇인가?
◆ 김 : 수한에 살 때 집안에 있던 가마니 꿰매는 바늘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쓰시던 밥주발과 사주단자 집게, 송곳, 무당방울들 후세사람이 보면 신기할 것을 예상되는 물건들을 주로 모았다. 어린 시절부터 물건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던 것 같다.

◇ 이 : 옛날 동전이 눈에 뜨이는데 상당히 많은 양이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 김 : 안사람이 허리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동전을 깔고 자면 효험이 있다고 들어 이왕이면 오래된 동전으로 깔아 주고 싶어 수집하다 보니 많은 양을 수집하게 되었다.

◇ 이 : 영화 포스터를 비롯하여 각종 선전물들도 눈에 뜨이는데 대부분 이런 분야는 특수한 사람만이 수집 가능한데…
◆ 김 : 우리나라의 굵직한 영화 포스터를 이렇게 체계적으로 수집한 사람은 한국에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고명품 포스터도 모두 갖고 있다. 오래 전 대규모 문화행사 포스터 등 모두 모아 놨다. 미래에 이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최고의 볼거리라고 생각해 수집하게 되었다.

◇ 이 : 좋음 물건이 발견되었을 때 사고 싶은 충동은 짐작할 것 같다. 그러나 충분치 못한 살림에 번민도 많았을 것 같고 어려움도 많았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비화가 있으면 말해 달라.
◆ 김 : 돈이 없어 못 사고, 그 다음날 가서 팔려 나간 것보면 너무 아쉽다. 물건 한개에 3~4개월 봉급 정도를 호가하는 것이 보통인데 물론 보유하고 있었다면 4천만원 정도의 가치는 나간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물건을 사려면 간사하게도 해야 하고 달래도 봐야 하고 애교도 떨고 갖은 행동을 했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수억 수천만원 짜리는 없지만 수백만원 짜리는 많다. 이 정도 수준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두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이 :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에피소드는?
◆ 감 : 도기 중 완벽한 것이 시장에 나왔는데 보는 순간 이 것을 꼭 손에 넣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값이 너무 비싸기에 5.6번에 시도하다 4.5년 걸려서 구한 것이 있다. 애 착이 가는 물건이다.

◇ 이 : 왜 이렇게 많은 양을 모았나?
◆ 김 : 이게 우리의 뿌리이다. 없어져 가는 뿌리를 재생하지는 못한다. 생활용품 하나도 역사의 유물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되었기에 소신을 가지고 수집했다. 요즘의 학생들 마음속엔 줄기만 있고 뿌리가 없는 것 같아 항상 마음 아프게 생각했다 이런 연유가 나를 고집스럽게 만들은 것 같다.

◇ 이 : 어린 시절도 특수하게 행동했을 것 같은데 시골 얘기 좀 하자.
◆ 김 : 동정초등학교 다닐 시절 보은읍으로 미술대회를 나갔는데 도구도 없이 몸만 갔었다. 크레파스를 살 형편도 안되고 그냥 가 봤다. 미술을 굉장히 좋아했고 화가의 꿈도 있었지만 집안형편으로 인해 이루지는 못했다. 할머니와 뒷산에도 다니고 수한 고향의 산에는 모두 가본 기억이다. 이 자연에서 도공이 되어 도자기를 굽는 꿈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 꿈이 이루어 질 날이 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 이 : 직장에서는 눈총도 받고 집안 식구들이나 주위에서의 눈길이 시원치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 김 : 직장에서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이런 취미 관계로 불이익을 당한 적은 있다. 두 가지 일을 계속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사실 직장과 집안 모두가 나의 일로 인하여 희생을 해야만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부모님 속도 많이 썩였다. 골동품을 모아야 하는데 돈은 모자라고 하는 수 없이 자가용 승용차와 아파트를 팔았던 적도 있다. 그런 와중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나의 불횰고 돌아가신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살아 생전에 이게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게 가장 안타깝다. 돌아가신 후에라도 이것이 뜻있게 사용되는 것을 보여주는 게 고인들에게 효도하는 유일한 길이다.

◇ 이 : 어려울 때 가지고 있는 물건을 왜 처분하지 않았는가? 가족들을 외면한 결과이지 않는가?
◆ 김 : 어려울 때 팔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었다. 보존하고 가지고 있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전체를 값으로 치면 수십억 이래도 풀칠만 한다면 팔고 싶은 생각은 없다. 죽을 때까지는 안 바꾸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모두 전시하려면 준비하는 시간도 오래 걸려야 하지만 장소도 2천여 평은 잡아야 모두 전시가 가능하다.

모두 전시가 되어 많은 사람이 와서 보고 역사를 배우며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나의 꿈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다. 특히 할머니가 나를 좋아하셨는데 나를 걱정만 하다가 돌아 가겼다. 할머니와 아버님을 위해서라도 고향에 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 이 : 소장품을 종류를 나눈다면 기억에 있는 것을 정리해 달라.
◆ 김 : 토기의 일부는 삼국시대 부장품도 있다. 고려장에서 나온 것들 고려청자, 이조백자, 일정 때 것, 구한말 근대 모두 구한말 이전 것을 오리지널로 갖고 있다. 30점 정도 된다. 고려청자류 30여점, 백자류는 1천여점, 자료 될 수 있는 파편종류 수천점, 민속품도 수천점이 있다. 근대사 유명자료 10.26등 5.6공 정권 등 특이한 사건 있는 것은 모두 있다. 또한 민속품은 일상 생활용품, 화로, 베틀 자리 틀, 이조 무쇠 솥이 있고, 옛날 화폐, 동전은 수백점 종류로 수는 셀수가 없다. 고서는 20점. 근세에 나온 음반 다수와 포스터 수백점 이다.

◇ 이 : 앞으로 희망이 있다면 말해 달라.
◆ 김 : 내고향 수한면 차정리 사람들은 모두가 친척 이상으로 서로 돕고 사는 인심 좋은 동네이다. 작은 지식이지만 지금은 골동품의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있고 어떻게하면 오래된 물건들을 보관 할 수 있으며 전시 할 수 있는가에 자신감이 있다. 고향에 살면서 지금 까지 해 왔던 일을 문서화하고 정리하며 고향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