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共의 실패는 즉흥인사가 주요인
정무차관 출신 조경근 변호사
1997-03-15 보은신문
◆ 조경근 변호사 : 정무차관에 들어간 특별한 계기는 없다. 민주계나 정치계에 연줄이나 인연도 없고 정치를 해보겠다고 정당에 가입하거나 지구당위원장을 맡은적도 없다. 다만 여기적기 글을 쓰고 직접 MBC 라디오에서 생방송으로 시사프로인 『라디오 동서남북』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보니 핵심인사와 인연이 된 것이지 정치에는 구체적인 관심이 없었다. 정무차관으로서는 대단해 열심히 일했다. 국무회의에 대신 참석하거나, 경제장관회의 등에 많이 참여 아이디어 회의를 했지만 나름대로 이래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서 보니 현정치권이 의욕만 넘치지 YS정권이 체계있는 청사진이나 소프트웨어 없이 즉흥적으로 통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보고 걱정이 앞섰다. 결론적으로 YS는 어떤 통치철학을 갖고 일관성 있는 정치를 한게 아니라고 본다. 특히 즉흥적 인사를 한 것이 실패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극단적으로 보건복지부장관 7번째 경제부총리 경제기획원장관, 재경원장관 5번째, 심지어는 경제수석도 4번째 갈아치웠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 앉아도 평균 5개월이나 9개월 장관으로 앉아 있다면 업무에 효율이 있겠는가. 경제부처장관도 농림부장관도 5번째 바뀌어야 될 이유없이 바뀌었다. 비리에 연루되지도 않았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바꿨다. 건전한 노선과 정책에 있어서는 대통령과 충돌할 수도 있다. 잘되고자 하는 방향에서 전문가를 내세워야 한다. 그렇지만 비전문가를 세운다든지 측근을 장관으로 앉혀 몇 개월 자리만 지키다 가게 할 바에야 정책이 존재할 수 없다. 과학기술처장관은 박대통령시절 과학기술 진흥을 목적으로 만든 부처인데 과학기술과는 문외한을 계혹해서 인사에 임용하고 있다.
대통령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하는데 적임자를 일 할만한 부서에 배치 하는것이 인사정책의 요체다. 인사는 만사라는 말이 있는데 잘 골라서 뽑고 힘을 실어줌으로서 경륜을 펴게 해야 한다. 복지부는 할 일이 많은 부처이다. 복지란 어떻게 펴 삶의 질을 높이느냐가 관심사인데 대통령 책임제에서 지역구의원을 장관에 임용하면 정책을 펴나가는데 어려움이 많다. 민원발생시 지역구 관리까지 해야하는 장관이 업무에만 전념 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 이 : 현재의 정치 상황이 매우 어렵다. 만약 현재 정치판에 있다고 한다면 무엇이 제일 급한 일인가? 그리고 현역정치인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 조 : 김대통령이 임기 1년여 남기고 대통령이 과연 어떻게 되야 하는가가 걱정인데, 순수하게 한 국민의 입장에서 한국의 해방후 역사 50년대와 60~90년대 90년대 이후로 구분해서 생각해 봤다. 50년대는 개발연대로 경제제일주의와 개발주의를 목표로 성과를 거뒀다. 국민들의교육열과 박대통령의 일관성있는 경제정책의 지속추진은 지금의 경제강국을 만들었다.
이제 우리의 목표는 선진민주사회로 가야한다. 잘 살면서 민주사회로 넘어가기 위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범국민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통치자는 물론 국민들은 각자 자기가 선자리에서 근면성실하고 처지에 맞는 삶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금년에 있는 대통령 선거는 정말 중요하다. 95년부터 한국유권자운동연합 공동대표로서 일을 하고 있다. 1년여간 바른대통령만들기 국민대토론회 시작했는데 2달에 한번 심포지움을 하고 있다. 대권논의는 지금도 늦다. 대선후보 선출 방법과 선출기준 주제 토론회를 가졌고 2월20일에는 세종문화회관 여야 각당대선후보 선출방법 이대로 좋은가라는 토론회를 가졌다.
여야의 대권후보 선출방법이 잘못돼있다. 민주적인 방법으로 실질적인 경선 아래 제대로 된 후보 선출이 안되면 원하지 않은 객관식 시험 비슷해서 선거를 치러야 한다. 이는 바른대통령 뽑는 의미가 없어진다.
◇ 이 : 변호사도 전문직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귀하는 어떤 부분이 전문인가?
◆ 조 : 원래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대학원 2년과정을 거쳐 MBA(전문 비지니스 과정)와 법학석사를 받았다. 미국 워싱턴 DC에서 82년도에 변호사로 1년간있었는데 무역규제관련 투자 또는 기술도입, 국제거래법 덤핑관세부과, 무역위원회(ITC) 2대위원으로 3년임동안 일했다. 회사의 외자도입과 기술도입과 관련해 일했다.
◇ 이 : 방송을 많이 타고 유명인사가 되었다. 요즘에는 TV 출연이 뜸한데 한번 스타가 되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상식이다. 앞으로 방송 출연계획은 없는가?
◆ 조 : 90년 들어 방송하면서 토론프로를 했는데 탈렌트는 타고 난다는 생각이 든다. 토론회에 많이 나가 방송하다보니 사회활동쪽에 불려다니게 됐다. 민주화가 이뤄지면 라디오 인터뷰를 통한 토론회는 취향과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 변호사로서도 열심히 하겠지만 과외활동으로 시민운동과 라디오 방송을 하고싶다. 자연스럽고 제대로 할 수 있으면 하고싶다. 텔레비젼은 녹화하고 잘못돼면 바꾸면 시간을 만힝 빼앗기고 보람을 못느끼는 일이다. 인기는 물거품과 같은 것 아닌가.
◇ 이 : 한 때는 여당의 강력한 국회의 원후보로 거론되었던 적이 있다. 보은군민들로서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앞으로 정치판에 들어 갈 생각이 있는가? 아울러 실무형 논리현 사고를 갖고 있어보여 정치에 많은 관심이 있는것 같은데…
◆ 조 : 4·11총선시 권유받았었지만 선후배와 관계도 있고 여러 분위기상 출마할 뜻이 안섰다. 특히 혼탁한 정치풍토에 뛰어들어 내뜻을 펼수 있을까 망설임이 컸다. 서울서도 2~3군데 권유를 받고 실제 몇차례 만나기도 했다. 변신이라는 것이 마음이 부담이 크고 정말 내역할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 어떤 자리도 망설이지 않겠으나 현재로선 시민운동에 전념하고 싶다. 이제는 처자식을 위한 삶에 해방되었으니 사회를 위해 필요한 삶에 주력하겠다.
◇ 이 : 지금 까지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 조 : 해고무효소송에 승소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얼마전의 노동법개정에 따른 사태와도 관련이 있어서 이다. 한국전기공업협동조합 중소변압기 배전반을 만드는 중소기업회사의 협동조합 과장급인 성모씨가 부당해고 되었다. 1심에서 이겼고 항소해서 얼마전에 이겼다. 노동법사태와 맞물려 정리해고의 부당성 새삼 논의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나로서는 상당히 의미있는 재판이었다.
◇ 이 : 변호사의 직업이나 정치인을 막론하고 경제를 모르고서는 무엇이든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귀하의 경제 실력은 얼마나 되는가?
◆ 조 : 결국 대통령이 모든 분야 다뤄야 하는 만능탈렌트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를 잘 활용해서 일관성 있고 시의적절한 경제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지금까지는 인사정책의 잘못으로 경제정책이 없다. 우리 경제가 위기에 처해있지만 지금도 비관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인정할 것은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국민 대호소를 통해서라도 공감을 불러일으켜야만 더 깊은 수령으로 빠지지 않는다. 겸허하게 국민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면 회생 할 수있는 분위기다.
◇ 이 : 고향은 지금 재정자립도의 문제가 심각하다.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언을 한다면?
◆ 조 : 보은군도 차기 보은군수를 잘 뽑아봤으면 좋겠다. 정말 능력있는 군수 뽑아야 하는데 경험이 풍부하고 인맥이 중앙에 많이 있는 능력있는 인사가 차기 군수로 뽑힌다면 방법은 여러 가지 있으리라 본다. 지역적인 여건과 특성을 감안한 사업을 벌여야 하는데 관광사업이 절절하다고 본다. 지금 도시는 자연이 황폐화되고 공기는 오염되어 있다. 보은은 이를 잘 활용해서 재정자립도를 올려나가는 방법이 있지 않겠는가. 얼마전 열린 조찬모임에 대해 아주 좋게 생각한다. 보은신문이 보은지역의 의식개혁의 선도자 역할을 하고 군민운동이 벌어진다면 훨씬 빨리 재정자립이 증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정신의식개혁이 가장 큰 문제다. 요즘 아이들 덩치만 크지 의식은 없다. 우리나라가 현재 그렇다.
◇ 이 : 이젠 가족 얘기를 하자. 고향에 있는 친인척의 얘기도 함께 전해 주면 고맙겠다.
◆ 조 : 딸만 셋이다. 큰 딸은 서울대 공대 항공우주공학과에 다니고 있고 둘째는 서울대 사회과학대 신문학과를 다니고 있고, 막내딸은 이제 고1이다. 안사람은 대전대 전임강사 출신인데 지금은 전업주부이다. 고향에는 친형님이 원남에서 청성 주유소를 운영하는 조경철씨이다.
◇ 이 : 앞으로 고향에 관한 봉사를 할 계획이 있다면 우엇이 있는가?
◆ 조 : 기회가 오면 절적히 하겠다. 보은중학교 9회 졸업생인데 78년에 검사가 되었다. 보은중 출신으로서서는 내가 검사가 처음됐다. 내가 검사가 처음 됐다. 고향의 관심 덕택이다. 앞으로 고향에서 당위성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흔쾌히 시간 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