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건강한 정신력으로 극복
우차동씨, '96원예부문 과수대상 수상
1997-02-22 보은신문
가장이 된 그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일이라도 했어야 했으며 그러던 중 동네 방앗간에서 일하게 되었고 방앗간에서의 불의의 사고로 오른족팔을 잃게 되어 또 한번의 시련과 좌절을 느껴야만 했다. 이런 시련에 더욱 세상을 어렵게 만든 것이 병환에 계시던 아버님에게는 자식의 사고 소식이 알려지자 충격을 이기시지 못하고 그해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다.
수족이 멀쩡해도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속에서 그의 장애는 더 큰 짐이 되었지만 그는 장남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일했다. 그의 이러한 부지런한 삶이 주변사람들을 감동시켰으며 동네 사람들 역시 그에게는 꿈과 희망이 되어주었다고 말한다. 그가 23살이 되던 해 친구의 권유로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 9백여평의 사과밭을 시작한 것이 지금은 3천5백여평의 어렵지 않은 평범한 농사꾼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2급장애를 안고서 평범한 오늘이 있기까지는 그의 잃어버린 오늘팔이 되어준 부인 박수자씨의 내조를 빼놓을 수 없다. 우씨가 27살 때 자신이 살고 있던 바로 뒷집에 박수자씨를 만나 연애를 시작했고 그들의 만남이 결혼으로 이어지기까지에는 수많은 반대와 역경이 뒤따랐으며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부지런한 심성밖에 내세울 것이 없었던 그로써는 말없이 따라와준 부인에게 무언의 미소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가 부인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몸이 불편한 우씨를 따라 고통을 둘로 나누겠다는 박씨의 결심은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를 극복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더욱 부축이고 있었다. 우씨 부부가 평소 어려움속에서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중 하나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집념하나로 어떤 일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농토를 조금씩 늘려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부인 박씨는 남들 다하는 화장을 지금도 하지 않고 있으며 기본적인 여자로써의 멋보다는 항상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이 화장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러한 우씨 부부의 삶이 헛되지 않아 지금은 지금보다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마음도 생기게 되어 지금은 자신과 처지가 같은 장애인협회 보은군지부 총무를 맡아 많은 사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그가 30여년이 너게 해온 사과농사 역시 인정을 받게 되었고 그가 생산한 사과품질이 인정돼 지난해 원예부분 과수대상을 받는 성과를 올렸다. 현재 연평균 2천여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그가 생산한 사과는 대전농협공판장과 청주, 대전 대도시에서 직접 구입해 가고 있다. 그는 이제 평범한 노티사과의 주인공이 되었고 1녀 2남중 장녀를 출가시킨 손색없는 아버지의 역할 뿐만아니라 지역사회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구성원으로 우리농촌을 지키며 항상 농사꾼을 고집하고 있는 사람중에 한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