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건강하고 화목하게 하옵소서!”
수한면 장선리 洞祭祠
1997-02-15 보은신문
같은시각, 주민들의 눈을 피해 마을뒷산을 바삐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지게에 가득 제물을 짊어지고 공양주(곽정보 69), 시중드는 집사(김기표 61), 축관(유충열 44)이 산을 오른다. 어둠이 벌써 시야를 가리우고 있다. 매운 바람은 귓볼을 때리고 쌓인 눈은 발목까지 푹푹 잠긴다. 한해의 안녕과 복락을 짊어지고 산지당에 도착한 공양주는 맨먼저 금줄쳐진 돌탑에 정한수를 떠다놓고 그옆에 촛불을 밝힌다.
어둠을 불사르며 새찬 바람속에 촛불이 타오른다. 공양주는 본격적인 동제사를 위해 만수향을 피워 올리고 서둘러 젯상을 차린다. 산지당에 퍼지는 만수향 향내, 산신의 기운이 주위에 가득하다. 축관이 읽는 축문에 따라 공양주는 마을을 수호해주는 산신에게 소지종이 세 번, 마을의 안녕을 위해 소지종이 세 번 피워올린다. 이제는 마을 39가구 호주들의 이름이 불리워진다.
공양주는 소지종이를 태워올리며 그들 집안의 걱정, 대소사를 산신에게 고한다. 마을민 개개인의 한해의 모든 바램과 염려가 타오르는 소지종이와 함께 하늘로 날아오른다. 「한해 부디 건강하고 장가못간 자식 장가가게 하옵시니 올해의 모든 걱정 산신에게 맡기나이다」 공양주 내려오길 기다리던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동제사지낸 백설기와 누룩술을 나눠 먹으며 어화둥둥 잔치를 한다.
지난 2월 10일 군내 소수마을이 동제사를 지냈다. 1970년 새마을사업과 함께 미신타파를 외치며 동제사가 없어진 마을이 많다. 그러나 전통을 고집하며 동제사를 지낸 장선리에 유달리 돈독한 단합과 화목은 선조들이 지낸 동제사의 참의미를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