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고한 문학정신 정립 필요

지역주민 무관심속 작가의식 상실

1997-02-01     보은신문
96년은 문학의 해였다. 하지만 정작 몇몇 커다란 행사를 제외하고 보은문학의 가치와 역할을 되새기는 데는 아쉬움이 많았다. 문학이라는 것이 애당초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무엇인가를 한다고 해서 발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 문학인들의 열악한 창작여건 및 미미한 작품활동에 비해 『오장환 문학전』, 『문학의 밤』등 유난히 커(?)보이는 행사들로 인해 더 많은 아쉬움을 가졌을 것이다. 더구나 보은문학이 보은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볼 때 문학인들의 활동은 많은 반성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면 보은문학이 보은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보은문학의 발자취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보은문학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보은에는 삼강문학회, 보은문학회, 여샘문학회, 시우회 등 4개의 문학단체가 활동을 했거나, 해오고 있다. 삼강문학회(회장 김기준)는 87년 보은에서 문학단체의 첫 포문을 열었다. 몇 달 뒤에 생긴 보은문학회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삼강문학회. 그러나 회원 대부분이 청주와 대전, 기타 외지의 유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자주 만날 수 없었고 급진적인 경험으로 인해 좌초되고 말았다.

보은문학회(회장 김지형)는 88년에 창립되어 『문장대』라는 동인지를 발간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임승빈 시인, 강태재 소설가, 임병무 시조시인, 김창규 시인, 송찬호 시인 등 보은지역 출신의 기성문인도 참여했다. 그러나 동인지 발간시 기관의 지원이 없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회원의 상당수가 외지로 전출하고 해서 활동이 부진, 사실상 해체된 상태다.

이런 가운데 90년 4월 보은문학회원 중 송원자씨, 이영희씨, 김영애씨, 김철순씨 등이 주체가 되어 여샘문학회(회장 송원자)라는 주부문학단체를 조직했다. 현재 보은의 유일한 문학단체라고 할 수 있는 여샘문학회는 보은문학회의 동인지 『문장대』를 계속적으로 발간해오고 있다. 10여명의 주부들만으로 구성되어 작품토론, 시인과의 대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4명의 등단작가를 배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김철순(42, 마로 관기)시인, 박병숙(33, 보은 삼산)시인, 박영옥(외속 장내)수필가, 이성숙(42, 보은 장신)시인 등이 그들이다. 시우회(회장 송병순)는 시조 경창 동우회로 매년 속리축전기간에 시조경창 대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국시조경창 대회를 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한 바도 있으며 현재 30여명의 회원이 활동중이다. 한편, 보은문학의 역사를 「등단했거나 시집을 발간한」 개인적 측면에서 보면, 작고한 것으로 알려진 오장환 시인을 비롯 10여명의 작가가 있다.

오장환(1918∼?, 회인 중앙)시인은 37년 처녀시집 『성벽』을 출간한 이후로 『헌사』, 『병든 서울』, 『나 사는 곳』등의 시집을 남겼다. 보은이 낳은 천재적인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오장환 시인은 48년에 월북해 40년만인 88년에 해금된 작가로 지난해에는 그의 시정신을 기리고 보은 정신을 찾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오장환 문학전』이 개최되기도 했다.

임승빈(보은 삼산, 청주대학교수)시인은 83년 『월간 문학』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한 이후 시집 『아버지는 두릅나무 새순만 따고』, 『분리된 꿈』등이 있다. 뒷목동인. 문학박사. 현재 KBS TV 『청풍명월』을 진행중이며 청주에서 많은 제자문인들을 배출하고 있다. 강태재(보은 죽전, 청주 상공회의소 진흥부장) 소설가는 『시와 시론지』에 단편 소설 『봄눈』으로 등단하여 동 문학상을 수상했다.

내륙문학 동인. 보은신문에 칼럼 『생각하며 삽시다』를 연재. 보은문학회 명예회원으로 활동하기도. 임병무(보은 삼산, 중부매일 문화부장) 시조시인겸 수필가는 88년 『시와 시론』의 추천을 받은 데 이어 96년 『시조문학』으로 데뷔했다. 흥덕사지 발굴 특종으로 한국 기자상 수상. 보은신문에 칼럼 『생각하며 삽시다』연재. 보은문학회 명예회원으로 활동하기도. 박맹호(보은 장신, 민음사 대표)소설가는 문학뿐만 아니라 출판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사실상 한국 출판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김사인(회남) 시인겸 평론가는 82년 『시와경제』동인으로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시집 『밤에 쓰는 편지』등이 있다. 『노동해방문학』활동.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창작과 비평사 편집위원 활동. 김창규(내북 법주, 청주 빛고을 교회 목사) 시인은 『분단시대』동인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충북민족문학회 등 활동. 시집으로는 『푸른벌판』『그대 진달래꽃 가슴속 깊이 물들면』등.

이흥섭(70, 보은 종곡) 시인은 일명 『할머니 시인』으로 불리며 시집 『소쩍새 우는 언덕』있다. 류선(60)시인은 『시조학』을 통해 문단에 데뷔했다. 시조집으로 『세월의 강을 건너며』『메아리 치고픈 내 목소리』덩이 있으며 교육공무원. 황귀선(56, 탄부 장암, (주)모닝글로리 부사장) 시인은 시집 『사랑은 아파하는 것만치 사랑하는 것이다』『사랑에는 쉼표가 없습니다』등이 있다.

박기식(탄부 장암) 시인은 91년 『우리문학』에 『고향』외 4편으로 등단했다. 시집 『산비둘기 장바위골 넘보며』『연기꽃』『무인도』등이 있으며 일명 『화가시인』. 화가답게 수채화처럼 맑고 아름다운 시상이 특징. 이문수(41, 본명 이옥래) 시인은 92년 『월간문학』신인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93년에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입선하기도 했다. 이재현(41, 마로, 공무원) 시인은 시집 『빛들의 충계』가 있으며 『동양문학』『문예사조』에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한국자유시인협회, 내륙문학회 활동.

송찬호(내북 적음) 시인은 87년 『우리시대의 문학』으로 데뷔한 이래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민음사)를 통해 90년대 주목받는 시인으로 떠올랐다. 이외에 시집 『10년 동안의 빈의자』가 있으며 현재 소설 작업중. 보은문학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김백산(외속 봉비, 본명 김용복) 시인은 건축노동자로 시집 『잘못이 있더라도』가 있는데 젊은 시인중 주목받는 시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철순(마로 관기) 시인은 수차례의 백일장 장원을 차지함과 동시에 95년 제1회 지용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동양일보에 칼럼 연재중. 여샘문학회원으로 활동. 충북여성문인협회, 여백회 등을 통하여 활약중. 이상으로 보은문학의 발자취를 단체와 개인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외에 등단했거나 시집을 발간한 문학인들이 누락되었다면 순전히 기자의 게으름 탓이다)

보은 정신에 미치는 영향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자기 고향의 문학인들이 누구이며 무슨 작품을 발표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원인은 문학작품을 비롯한 활자매체가 TV등 영상매체에 밀려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또하나 치열한 작가의식의 부재로 보은을 대표할 만한 문학인이 없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글 (문학작품)을 쓰고자 하는 절실한 창작욕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보은의 대표 문학인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면 「보은문학이 보은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이에 대해 임승빈 시인은 「속리산의 아름다움에 비해 문학인들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며 확동도 거의 없어 보은의 정신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이것은 보은 지역이 철도나 고속도로 등이 전무한 상태에서 빚어지는 고립성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또한 근대 산업화 이후 농촌이 도시에 대해 갖는 상대적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데서도 그 원인을 찾는다.

송찬호 시인은 「문학인들의 고향은 그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제하고 「우리지역은 보은만의 독특한 생활양식을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보은문학이 보은의 정신에 어떠한 영향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받는 편」이라고 말한다. 결국 보은문학이 보은의 정신에 뚜렷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지역 문학인들이나 주민들이나 서로가 너무나도 무관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은문학이 가야할 길
그러면 보은문학이 보은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우선 지역 문학인들은 앞서 지적되었던 치열한 작가의식을 되살려 불타는 창작욕구를 강화시켜야 한다. 이룰 위해 지역출신의 문학인들이 자주 만나 토론을 하고 작품발표를 할 수 있는 기구(예를 들자면 『보은문학』)를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에 열렸던 『문학의 밤』행사에 지역출신의 모든 문학인들이 능동적으로 참가하여, 점진적으로 통합기구를 마련하도록 노력하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주민들은 지역 문학인들의 작품중 최소한 하나 정도는 소장하는 『지역 문학인 작품 1권갖기』운동을 벌여야 할 것이다. 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문학인들에게도 큰 자극제가 될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지역 문학인들과 주민들의 다양한 접촉 기회를 늘려야 한다. 지역 문학인들이 심사하고 고교생들이 참여하는 『논술대회』(가칭) 개최, 논술고사 대비 『초청교사』활용, 『문학인의 밤』과 각학교 특별활동시간에 가질 수 있는 작가와의 대화 혹은 창작지도 등을 적극 검토하여 실행하는 것이다.

문학정신은 최후의 보루
지역 문학인들은 자신의 창작 활동이 매우 민감한 사회적 행위에 속하는 것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른바 작가의 대사회적 책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며, 사법적 권력과 독자 일반으로부터도 독립된 작가적 책임의식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새해는 문학인들에 있어 이같은 인식이 더 탄탄해지고, 그 결과 더 견고한 문학정신이 지배하는 시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문학 및 문학인의 가치와 힘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는 결국 심오한 문학정신, 그 것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