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사는 사회

우완제(회북 애곡, 충북 도청 공보관실)

2002-08-31     보은신문
십 수 년 전 이야기이다. K씨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공개경쟁시험을 거쳐 공무원에 임용되었다. 초임 발령이라 동사무소에 배치되었는데, 며칠간을 ‘일선행정기관’에서 근무해 보니 본인에게 맡겨진 일(사무분장) 이외에도 다른 동료직원들의 업무를 대신 처리해야 할 때가 허다하고, 사무장(지금은 없어짐)을 중심으로 관내의 주민에 대한 각종 독려성 방문, 캠페인, 불법행위 단속, 각종 전단 배부 등의 이외에도 공무원들의 고유업무라고 보기 어려운 잡다한 분야에 이르기까지 할 일이 많았다. 그간 동경해 왔던 공무원사회와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며칠새 갑자기 K씨의 근무태도가 지구 반대쪽에 가 있었다. 사무분장에 명시된 본인의 고유업무 이외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사무장과 선배들의 지시, 동료직원들과 같이 움직여줘야 할 일이 많은데도 본인의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규정을 들어 조목조목, 당당하게 거부했다.

그러다보니 선배도, 동료들도 하나 둘 등 돌리기 시작하였고, 일선업무의 성격상 동료간에 불가피하게 서로 협조해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끊임없는 마찰을 일으켰다. 이를 보다 못한 사무장이 ‘직원사무분장’을 재조정하게 되었다. K씨에게는 “다른 동료들과 논쟁의 소지가 있는 것, 상급기관과 직접 연계되는 업무, 원만한 대인관계로써 해결해야 할 주민생활과 밀접한 분야, 규정에는 없으나 불가피하게 해야 되는 일” 등의 업무는 일체 제외시키고 사무규정에 분명하게 명시된(한 달 처리 건수가 몇 건 되지도 않는) 업무만 그에게로 분류해 놓았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는 이어졌지만, 사무실 전체적인 분위기로 볼때는 오히려 전보다 조용해 진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러던 중 몇 달이 지나지 않아 K씨는 갑자기 공무원생활을 그만 두었다.

그만 둔 이유는 잘 모른다. 미루어 보건데 K씨 스스로가 아마도 상당기간을 두고 지내보니 어느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려 하는 사람도 물론 없었거니와 자기 분야가 아닌데도 공공의 목표 실현을 위해 서로 도와주고 양보하며 무리없이 공무수행을 해 나가고 있는 다른 동료들의 일사불란한 일상과는 달리, 홀로 원리원칙을 철옹성처럼 고수해 온 자신의 아집이 ‘더불어 사는 사회’와는 동 떨어진, 빗나간 판단이었음을, 그로 인하여 짧은 재직기간이나마 외롭게 표류해 온 생활이었음을 늦게나마 뼈저리게 느껴 스스로 무너진(?) 건지는 모르지만 …

인생은 ‘나(我)’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즉, 세상은 나(我)라는 존재를 떠나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고 깨면 나 아닌 모든 사람들과 어떤 형태로든 부딪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나(我)’라는 의미에 대해서 두 가지로 분류해 보자. 그 하나는 내 안의 ‘나’(自我)이고 또 하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他我)이다.

자아(自我)는 스스로가 정립한 독창적인 세계이며, 고유의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자아의 비중이 유별나게 큰 사람은 무슨 일이든 우선 저질러놓고 생각한다. 곧 행동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사려가 부족하고 저돌적이다. 모든 사고가 자기중심적이어서 자칫 남으로부터 경계의 대상이거나 외면 당하기도 한다. 또한 리더쉽과 성취욕이 강한 나머지 이기적이고 직선적이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량이 부족하여 주변에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타아(他我)는 남으로부터 내가 어떻게 보여지느냐 하는, 객관적으로 볼 때의 ‘보여지는 나’이다. 이 타아적 성격으로 치우쳐진 사람은 자신의 주관 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주장에 더 귀를 기울이며 그것을 좇는 스타일이다. 즉‘남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냐’하는 것에 더신경을 쓰다보니, 자기만의 뚜렷한 주장이 없으며, 설령 있다 해도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의해 스스로 묵살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내가 나의 삶을 제대로 사는 건지, 남에 의해 내가 사는 건지, 남을 위해 내가 사는 건지 가치관에 혼돈이 올 수 밖에 없다.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별다른 무리없이 넘어가는, 마음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이 역시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한 인간의 가치관에는 이 자아적 성격과 타아적 성격이 엄연히 공존하고 있으며 그 두 개의 성격이 차지하는 배분율은 개인별로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다. 사람마다 배분율이 다양함으로써 개성과 적성이 다르게 마련이며 그런 사람들로 형성된 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이다. 개인간의 장점과 단점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서로 맞물려져 채워지고 개선되는 상호 보완작용에 의하여 모두가 보다 나은 내일을 추구해 가게 된다.

이렇듯 나의 단점은 다른 사람의 장점에 의해서 보완되어 나의 삶이 유지, 지탱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전혀 간과해서는 안되며, 여기에 다른 사람의 단점을 나의 반면교사로 받아들이고 자신 스스로의 조화와 균형을 적정하게 유지해 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삶일 것이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