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한 파동의 미학, 벌개미취

속리산 야생화〈6〉벌개미취

2002-08-31     보은신문
모든 존재의 그늘에는 파동이 존재한다. 때로 과격하게, 때로는 은근하게, 때로는 느낌조차 어려운 미세함으로 파동은 존재와 존재를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된다. 마음과 마음, 느낌과 느낌 안에서 분명 살아 흔들리며 존재하는 것들의 꿈을 관장한다. 행위보다 선명하게, 언어보다 강력하고도 자극적으로 번지는 파동을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시하며 사람들은 입에 올리기를 터부시한다. 전기자극처럼 가슴 깊이 꽂히는 파동을 억누르느라 사람들은 곧잘 우울을 가장한다.

우울은 은밀하게 감정의 늪을 향해 틈입하는 파동을 거부하지 못할 때 위장하기에 적합한 의복을 갖추고 있다. 너무 헐렁하다거나 너무 타이트하지 않아서 타인들은 곧잘 우울이라는 의복 속에 가려진 파동의 실체를 감지하지 못한다. 깊은 우울의 바닥으로부터 밀어올려진 한숨을 한 차례 내뱉고는 곧장 체념과 의식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것은 새로운 질서에 대한 암시여서 흔들림에 익숙해지게 되고 익숙함이란 자체만으로 이미 질서는 형성된다.

부동의 마음으로 벌개미취가 피워올린 연한 자줏빛 꽃을 보노라면 갈래꽃 특유의 파동을 감지할 수 있다. 미세하고도 은근하게 전해 오는 가녀린 파동 속에는 묘한 쾌감도 함께 들어있다. 느닷없이 밀어닥치는 정서의 반란은 예고없이 시작되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재빠른 대처방법도 동반하고 오는 게 특징이다. 정서의 안정이라는 명명이 가능하다면 벌개미취는 분명 정서적인 안정을 가져다 주는 잔잔한 감동의 꽃이다.

갈래갈래 갈라진 꽃 이파리마다 하늘거리며 공중을 날던 나비의 날개짓이 숨어있다. 바람이 제 몸을 흔들 때면 가볍게 팔랑이며 은밀한 파동을 먼저 전달해 오는 벌개미취의 아름다운 도전. 벌개미취는 국화과 다년생 꽃이다. 산이나 들판의 습기가 많은 곳에서 볼 수 있으며 6월에서 10월경에 연한 자주색 꽃을 피운다. 10월에 결실을 맺는 벌개미취는 어릴 때는 그 순을 나물로 먹기도 한다. 싫증나지 않는 아름다움이 안으로 파고 드는 매력이 있어 요즘은 관상용으로 많이 재배하고 있다. 삶이 무게에 마음이 결린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은근한 파동의 미학을 만나러 산이나, 들로 어깨를 털고 나가보심은 어떨지.

〈제공 : 속리산 관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