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자랑스러운 태극기!

리 성 일(보은 강신, 재부군민회장)

2002-08-24     보은신문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이 있다. ‘휘날리는 태극기는 우리들의 표상이다’라는 노랫말과 같이 태극기는 우리나라의 표상이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것은 많이 있다. 우리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이요, 다른 나라에서는 KOREA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노래로 국가는 애국가요, 민요는 아리랑이며, 국기는 태극기, 나라꽃은 무궁화이며, 우리민족은 배달민족 또는 백의민족이라 부른다. 또한 우리민족의 조상은 환인천제와 환웅천왕과 단군으로 이어지는 천손족(天孫族)이다.

우리나라의 영산은 2700여 미터의 높은 곳에 지하수가 샘솟는 천지가 있어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의 근원이 되는 백두산이며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한글도 또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표상이다. 태극기!! 광복이후 우리 기성세대들은 태극기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처럼 국경일이나 국가적인 행사 때나 게양하는 엄숙하고 경건한 대상이었지 생활 속에서 가까이할 수 없는 것이었으나, 지난번 월드컵을 계기로 그 경건의 대상이었던 태극기는 아파트 몇 동을 뒤덮을 수 있는 거대한 태극기로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하였으며, 또한 태극기로 응원복을 만들어 입고 머리에 쓰고 얼굴에 그리고 신바람 나게 응원을 하여 또 한번 우리 국민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번 달은 뜻 깊은 광복절이 있는 달이기 때문에 태극기에 대한 것을 말하고자 한다. 태극이란 우주 만물이 생긴 근원이라는 뜻이며, 태극기의 가운데 둥근 원을 태극이라고 하며, 하늘을 뜻하는 빨강 색과 땅을 상징하는 파랑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극기를 처음 고안한 사람은 박영효로 알려져 있으나 97년 8월8일 일본 동경의 중앙 도서관에서 박영효 수신사가 일본을 방문한 1882년 10월 2일자 일본의 시사신보에서 태극기에 관한 중요한 기사를 발견함으로써 태극기의 고안자는 고종 황제인 것으로 115년 만에 확인되었다.

또한 이 사실은 박영효의 일기 사화기략(使和記略)에도 기록되어 있다. 1876년 일본은 우리나라의 문호 개방과 통상을 요구하면서 강화도 초지진 앞에 일본의 군함 운요호를 앞세워 시위를 하므로 우리나라의 수비대는 즉각 포격을 가하여 일본군함 운요호에 게양된 일본 기가 불타 버렸는데 강화도 회담 때 일본 기를 정식으로 게양한 배에 포격을 가한 책임을 추궁하여 이것을 속 시원히 해명 할 수 없어 이렇다할 국기가 없던 우리나라는 국기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우리의 난처한 입장을 눈치 챈 청나라는 청나라의 용기를 본받아 동방은 청색을 귀히 여기니 청색 바탕의 용기를 쓰라고 강압하였으나 고종 황제는 이를 분히 여기고 옥색 바탕에 태극과 4괘를 그린 태극기를 고안하였으며 박영효가 일본 수신사로 갈 때 국기를 이러이러하게 제작하라고 명하여 일본으로 가는 메이지마루호 선상에서 비로소 태극기를 제작하였으니 이날이 1882년 9월 25일 이었다.

박영효가 수신사 임무를 마치고 귀국한 다음해 고종황제는 태극기를 정식 우리나라 국기로 공포하였다. 최초 태극기의 형태와 재질은 사각형의 옥색 바탕이었다. 태극 도형은 원을 수직으로 나누어 머리 부분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회전을 시도한 부분을 홍색 칠하고 좌측에서 우측으로 회전을 시도한 부분을 청색 칠하여 두 극이 좌우 대칭 되도록 하였다. 이 모습은 마치 팔짱을 깊게 끼고 돌아가는 형상과도 같아 보인다.

두 극의 머리는 굵고 반면에 몸통은 짧으나 회전을 시도하는 모습이 역동적이어서 마치 힘찬 회오리를 연상하게 하는 것으로 주역 등 어떠한 태극 도형과도 차별되도록 도안되었음을 한 눈에 알아 볼 수가 있다. 최초 태극기의 4괘는 현재처럼 건(乾), 곤(坤), 감(坎), 이(離)가 아니고, 그림에서 보았듯이 손(巽), 간(艮), 진(震), 이(離)였다.

그러나 괘의 의미는 똑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고종황제는 최초의 태극기를 그릴 때 4괘의 의미를 동서남북이라고 분명히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바로「국기의 네 귀퉁이에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4괘를 그린 것을 조선의 국기로 정한다」라는 부분이다.
이렇듯 최초의 태극기는 고종 황제의 명에 의해 그 의미가 분명한 국기이며, 순간적으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오랫동안 연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후 우리나라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태극기는 많은 시련을 겪었으며, 해방이 되고 1948년 정부가 수립된 후 태극기 제정 위원회를 구성하여 1949년 10월 15일 문교부 고시 제2호로 공포함으로서 태극기가 만들어졌다. 우리 선조 애국 열사들이 목숨을 걸고 지킨 태극기를 사랑하고 길이길이 보전하도록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야 되겠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