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와 의무 그리고 정의

황종학(보은 산성1리)

1998-12-12     보은신문
지난 여름, 최대 시우량 95mm라는 엄청나게 많이 농경지가 쓸려 나갔다. 악몽 같았던 대수해! 1천억원이 넘는 손실과 함께 수해의 상처는 매우컸으나 3개월이 지난 지금 복구하는 중장비 소리와 함께 산천이 다시 변하고 있다. 이제는 항구복구를 위한 측량과 설계대로 수해복구사업이 하나하나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수해가 나자마자 경학각지에서 장비가 오고, 많은 의연품이 접수되었는가 하면 여름 휴가를 응급복구작업에 동참하겠다고 찾아온 낯선 젊은 부부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피해를 당한 농민들은 응급복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해피해조사에만 신경을 썼다.

물론, 조사에 누락되면 안된다는 우려때문에 당연한 행동이라는 볼 수 있겠으나 부서진 나의 논두렁의 응급보구는 제쳐두고 조사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면 훗날 수해피해 보조금이나 지원을 목적에 두고서 정부에서 전량 복구해야 한다는 것을 먼저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만삭이 된 일선 면사무소 공원이 몇일동안 수해 피해 조사를 다녀도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 없더니 수해와 관련하여 보조금이 나오고 농가부채를 연기해 준다고 하니까 내이름이 빠졌는지 면사무소를 번질나게 드나들며 확인하는 어느 농민을 보면서 과연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각기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나는 남이 누리는 만큼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라든지, "나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적절한 평등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한다면 비교적 그 사회는 『정의가 살아숨쉬는 더불어 사는 복지사회』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정의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올바른 질서 아래서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기본아래서 살아 숨쉰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는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불균형적인 배분기준이 있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헌법에 보장된 내가 다해야 할 『교육의 의무』는 물론이고 『국방의무』라는 짐을 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수해복구사업의 재원이 되는 세금은 내지 않고 내 몫을 주장하기만 하다.

내가 부담해야 할 『납세의무』는 다하지 못하면서 지원만을 요구하는 권리의 주장은 정말로 배분의 기준이 옳다고 보아야 할지 한 번쯤 되새겨 볼일이다. "각자의 몫은 마땅히 각자에게 돌려주라"는 로마법의 원칙은 평범한 사회 정의이다. 우리 모두 각자가 맡은 몫, 즉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고장에 살고 있는 군민으로써 마땅히 군 살림의 초석인 세금이나 부담금을 제대로 내면서 수해로 망가진 논두렁을 내 힘으로 복구한다는 순수한 정의의 실천자는 우리 주변에 얼마나 되는가? 이럴 때 각자의 몫은 각자에게라는 원칙에 따라 동일 범주에 속한 사람들에게 동일한 권리와 대우가 보장되지 않을까 싶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정책이 항상 배분주의를 기본으로하여 적절한 절차에 따라 국민들에게 혜택과 부담을 약속한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써 사회정의는 공도덕으로 흡수되어 진정한 선진 복지사회가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천재지변일 수 밖에 없는 수해 피해자는 어느 한 부분의 힘이나 노력으로 막지 못하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비록 물적 자원이 망가지는 재해이지만, 재해때문에 인간의 심성이 바로 싹트는 권리와 의무 그리고 정의가 망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수해 피해를 많이 당한 것이 자랑거리는 아닐진데. 나눠주는 보조금이나 지우너은 당연히 내몫이라고 생각하는 수재민의 주장이 공평한 논리가 될 수 있나 곰곰히 새겨보자. 내 논을 복구하는데 보조금 가지고 다소 부족하다면 내 경운기를 이용해서라도 내 맘에 드는 옥토를 만들어야 내 몫의 정의가 아닐까?

보조금이란 것은 그 자체가 나의 책임 아래 내 자본과 노력을 보태어, 사업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음에도 내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것은 나만을 생각하는 작은 욕심일 것이다. 17세기의 철학자 홉즈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허용하는 만큼의 권리를 남에게 허용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어느 사람이든 그가 상대하는 입장에 자기 자신을 두고 생각하고 또 상대방을 이쪽의 입장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정말로 항상 나 자신을 남의 입장에 놓고 생각하는 노력을 다해 줘야 내 의무를 다하면서 나의 목표인 복지사회를 구현하는 길이 아닐까 되새기며 내 몫의 과제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본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