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간다는 것

<406>

2019-08-29     최동철

 생명체는 반드시 언젠간 죽는다. 사람도 늙고 병들고 죽는다. 변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다. 석가모니가 말했다. “늙음이 오면 죽음은 찾아온다. 나 역시 죽음을 회피할 길이 없다. 나도 곧 죽을 것이다. 무작정 슬퍼해, 부질없이 울지 말고 참모습을 깨달으면 비탄과 애집과 근심을 없앨 수 있다.”

 석가의 말마따나 늙음과 죽음은 천하제일의 권력자, 재력가라 할지라도 피할 수도, 피할 대안도 없는 진리다. 하지만 노년 줄에 들어선 초년생 대부분은 이를 부정하고 거부한다. 죽음과 가까워진 나이 많은 늙은이가 됐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곧 충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자신은 아직 젊다고 대부분의 노인들은 생각한다. 정신적 노화 속도와 신체적 노화속도가 특히 자신에게만큼은 불일치하다고 여기고 싶어 한다. 세월이 자신은 비켜간 듯 동년배들에 비해 겉모습이나 정신연령 등 모든 면에서 훨씬 안 늙었다고 자부한다. 더 나아가 젊은 시절마냥 주변 이성들에게 자신은 아직 매력적인 사람으로 비칠 것이라 생각한다.

 이 때문에 늙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나이를 일부러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진짜 자신의 나이를 잊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늙음에 대한 거부심리 탓이다. 플로베르의 소설에 자신의 처지에 만족 못하고 허영 떨다 죽은 ‘보봐르 부인’의 “나는 아직도 나인데, 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말인가?”라는 독백처럼 거개 노인들도 늙었음을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백발이네, 주름도 많네. 늙었구나!”하고 서서히 인식하게 된다. 동시에 느끼려 하지 않았을 뿐 진행되어 왔던 요실금 등 각 신체적 퇴화증상도 받아들인다. 자의식 속의 이런 자신의 모습을 노년의 늙은이로 커밍아웃하는 것은 실제 복잡다단한 인생의 일대사다.

 노인으로 자신을 인정해 버린다는 것은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이 종착역에 다가 왔구나하고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러면서 자꾸 잘나갔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의 자신을 갈구하게 된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보은군 관내 노인들의 실정은 어떠한가. 대부분이 자식과 며느리의 보호를 받지 못해 홀로 사는 노인네들뿐이다. 자급자족 밥 끓여 먹어가며 아프면 동네 병원으로 일삼아 간다. 수술조차 포기해버린 아픈 다리를 끌며 밭에 나가 내일을 위한 파 씨를 뿌리기도 한다. 어쨌든 이들은 오늘도 늙음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노자는 말했다. 원하던 원치 않던 인생은 늙는다. 그리고 그 과정을 어떤 지혜로움으로 받아들일 것이냐가 숙제라면 숙제다. 곱고, 존경받고, 건강하며, 지혜롭게 늙고 싶다면 세상의 영욕에 얽매이지 않는 소박한 자유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