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로 버섯사 침수돼 수확물량 감소, 정전으로 습도피해까지, 재배의욕 상실
마로 갈평 김찬옥씨
1998-09-19 송진선
김찬욱씨가 버섯에 손을 댄 것은 92년, 서울에서 트레일러 기사를 하다 지병치료를 위해 마로 갈평에서 휴식을 취하며 만난 친구의 권유로 처음 200평에서 시작했다. 농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으나 친구의 도움으로 재배기술도 배우고 자신의 연구로 인해 상품성이 나아지자 점차 버섯재배에 매력을 느끼고 아예 농촌에 정착 버섯분야에서는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래서 93년 군 소득금고 자금을 받아 재배사를 늘리고 전문 버섯재배농의 길로 들어섰다.
그 후 95년과 96년에도 자금을 지원받아 버섯 재배사를 늘려 전국 최고의 버섯 재배농이 되겠다는 꿈을 달성시키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현재 느타리 버섯, 표고버섯, 영지버섯까지 2500평에 재배사만 30동이나 된다. 특히 김씨는 단순하게 버섯만 생산하는 차원이 아닌 좀더 나은 배지를 생산하고 버섯에게 유리한 생육조건이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것을 게을리하지않았다. 그 예로 나무에서만 생산하던 표고버섯을 느타리버섯 처럼 배지에서도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현재 시험단계여서 성공여부는 더 두고봐야 하겠지만 그의 연구하는 자세는 계속된다.
상황버섯까지 도전, 지금 적은 규모로 시작하고 있다. 많은 일손이 동시에 필요한 포장작업에만 동네 사람들의 손을 빌리고 간간이 노모가 도와준 것을 제외하면 버섯 작업은 그와 부인의 손에서 다 이뤄진다. 이와같이 버섯밖에 모르는 그에게 수해는 벼랑끝까지 내몰았다. 그런 그에게 힘을 주기 위해 부인도 백방으로 뛰어보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런 남편을 보다 못한 김씨의 부인은 남편의 재기를 위해 단돈 100원이라도 도와달라는 눈물어린 내용을 중앙언론에 호소했다. 아직 젊고 한 눈 팔지 않고 성실하게 버섯만을 키워온 김찬욱씨는 부인 강애자씨와 1남1녀의 자녀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버팀목삼아 도전의 끈을 놓지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