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로 잃은 민심

1998-09-05     송진선
국지성 집중호우로 보은군은 엄청난 재산상의 피해를 입었다. 농민들의 피와 땀과 정성을 쏟아부은 농경지는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애써 가꾼 농작물은 자갈과 토사에 파묻혀 다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풍년농사는 고사하고 올해 수확할 양식이라도 얻을 지에 농민들은 가슴을 저미고 있다. 도저히 자력으로는 회생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를 입은 우리들을 돕기위해 전국 각처의 관심과 정성이 집중되었다.

응급복구가 끝난 지금도 여전히 구호물품 및 이재민을 돕기위한 온정의 손길이 계속이어지고 구호물품은 9월2일 현재 쌀 등 총 8억여원 상당이 답지되었다. 이미 각 지역별로 이장과 분회장, 새마을지도자등이 쌀과 라면, 물, 고추장, 김치, 장판, 세제, 이불 등 다양한 구호물품을 나눠주고 있다. 이재민들은 구호물품을 받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누가 더 가져갔나에 대한 관심보다는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도록 구호품을 보내준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깊었다.

그러나 응급복구가 끝나고 어느 정도 수해의 잔상들이 사라질 즈음부터 수재민들의 마음이 험해져 서로 견재하기가 일쑤다. 수해가 났을 때 잠자는 이웃집 식구들을 깨워 함께 대피하고 이불을 나눠서 덮고 했던 이웃간의 인정이 사라진지 오래다. 누구는 쌀을 몇 포대 가져갔는데 나는 더 적게 가져갔다, 왜 장판을 주지않느냐 등등 누가 구호물품을 더 가져가느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리고 확인되지 않았으나 마을 별로 돌아온 구호물품은 많은데 받은 것은 그것에 비하면 형편없다.

어느 동네에서는 많은 양의 생수가 들어왔는데 받지못했다는 등의 내용이 들리기도 한다. 고발을 한다고 협박하는 수재민도 생기고, 급기야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 등은 수재민들이 알아서 처리하라고 맡기는 경우까지 생겼다. 구호물품이 수해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골고루 돌아가고 서로 마음이 상하지 않게 배분돼야 하는것은 기본이다.

만약 구호물품을 이치에 맞지않는 기준으로 나눠준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누구랄 것도 없이 보은군은 전체가 수재민이다. 농경지와 집을 잃지 않은 사람은 마음의 수해를 입었다. 수재민이든 그것은 나눠주는 사람이든 구호물품을 돈으로 계산하려는 심보보다는 수해로 인해 잃어버린, 함께 터전을 이루고 울타리를 이웃하면 살았던 그 살가운 민심을 회복하는 것이 지금은 더 급하다.

<삼파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