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경은 인간을 의롭게 하는가
최규인(속리중학교 교사)
1998-08-22 보은신문
이번 물난리 역시 집중호우에 의해서 발생한 것으로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일이었다. 하지만 자연의 순리나 이치를 거역했기 때문에 이러한 재난을 겪는 것은 아닌지 또 평상시의 무방비나 단견이 피해를 더 크게 만든 것은 아닌지 반성하는 자세는 필요할 것이다. 특히 하천과 관련된 제방의 축조와 교량 건설, 물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형태의 시설물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짚고 넘어가야만 하겠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쏟아 붓는 빗줄기를 보면서, 또 급격히 불어난 하천물에 자신의 삶의 터전인 가옥과 전담들이 차례로 잠기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의 왜소함과 한계를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아울러 삶 그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수없이 던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물음을 통해서 절망뿐인 우리들이 과연 무엇을 건져 올릴 수 있을지 아직은 아무도 자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지진으로 찢어진 땅에서도 샘물은 솟아나고, 폭풍우가 할퀴고 간 숲에서도 새는 운다”라는 어느 외국시인의 시귀처럼 우리도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희망의 조짐은 벌써 우리 주변에 모아지고 있다. 이번에 내린 폭우는 지난 80년도의 그것을 능가하는 것이지만 물난리 이후의 여러 조치는 지난번 보다 훨씬 더 체계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신속한 대피안내, 전기와 전화 상수도의 긴급한 복구, 발빠른 쓰레기 처리와 방역등 여러면에서 우리 사회가 그동안 많은 성장을 이루어 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젊은 군인들과 외부지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었다. 폐허가 된 주택을 철거하고 유실된 제방을 다시 쌓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 그들이 진정 이 나라의 기둥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동시에 군대를 고의로 기피하려던 사람들이 저지른 병무비리에 대해서 더욱 분개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또 한 가지 나를 감동케 한 것은 이번 수해를 통해서 나와 나의 가족을 걱정해 주는 많은 이웃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전국 각지에서 걸려오는 안부 전화, 직접 찾아와서 걱정해주고 위로해 주는 선후배들 이분들의 관심과 사랑은 곤경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결국 우리는 외로운 각각의 개별적 존재가 아닌 하나의 공동 운명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재난은, 특히 천재지변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노력은 평상시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특히 특수한 지형적 요인을 안고 있는 우리 보은군은 또다시 닥쳐올 수 있는 수해에 대비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과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가 있다면 이번 수해는, 비록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우리 모두를 더욱 성숙시키고 의롭게 만드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