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만들고 사람이 품은 멍에목 아름마을”

보은의 명소(14)-구병리 아름마을

2018-01-11     박진수 기자

속리산면의 동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구병리의 면적은 2.83㎢의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다.  동쪽은 경북 상주시와 접하고 서북쪽은 속리산면 삼가리, 남쪽은 마로면 적암리와 접하고 있다.
구병리 마을은 북위 36‘30, 동경 127’54‘에 있다. 본래 보은군 속리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윗멍에목이’ ‘느진목이’ ‘된목이’를 병합하여 구병산 밑이 되므로 구병리라 하였으며 1947년 속리면이 분할됨에 따라 내속리면에 편입되었다.

구병산의 구산(九山)은 신선대, 백운대, 봉학대, 노적봉, 쌀개봉등 9폭의 병풍을 둘러놓은 듯한 절경을 이루어 구병산인데 흔히 속리산을 아비산이요 구병산은 어미산이라고 한다.
2007년 내속리면은 속리산면으로 명칭이 변경됨에 따라 지금은 보은군 속리산면 구병리 ‘아름마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금 구병리로 가려면 속리산면 갈목리와 장안면 서원리로 삼가(비룡)저수지를 따라 가다가 삼가천을 건너면 왼편으로는 만수계곡이 오른편으로 저수지를 끼고 가다보면 마지막 끝자락에 자리한 마을이다.
삼가저수지가 끝날 무렵 구병리의 아랫마을, 삼가리 마을과 함께 작은 수정초등학교 삼가분교를 지나 구병산쪽으로 오르다 보면 예사롭지 않은 소나무 숲이 반긴다. 구병리 마을의 수구막이숲이 마을의 전통을 말해주고 있다.
구병산(877m)을 병풍 삼아 깊다 못해 오지 산골짜기에 아름다운 마을을 이루고 있는 구병리는 정감록이 예언한 ‘십승지(十勝地)’ 로 불릴 만큼 범상치 않은 마을이다. 누가 봐도 환란을 피해 살만한 곳이기도 하지만 그 풍광이 얼마나 빼어난지 보은군 전체를 놓고 볼 때 변화가 가장 느릴 것 같지만 가장 많은 변화를 실감하는 마을이다.

<구병리 마을유래비>
속리영봉 정맥이 서남쪽으로 꿈틀대며 30여리를 뻗어 오다가 불연 창공으로 용트림하여 깎아 세운 듯한 9개 절묘한 암봉의 구병산이 되니 산세가 웅장하고 수려하다. 동서로 가로 뻗으며 신선대, 백운대, 봉학대, 노적봉, 쌀개봉 등 9폭의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절경을 만들어 등산객을 부르고 있다. 흔히 말하기를 속리산은 아비산이요. 구병산은 어미산이라 하니 구병의 품속에 아늑히 자리 잡고 아비산 속리를 바라보는 우리 마을의 터전은 ‘비기(秘記)’ 에 삼재팔난을 피할 수 있다는 전국 십승지의 하나이다. 속리산 아래 ‘증항(甑項)’은 마을이 터 잡은 멍에목과 들목을 말하며 지형이 소의 자궁과 같다하여 우복동으로도 일컬어지는 길지 중의 길지요, 명당 중 명당이다.
중략...
예부터 현자준결(賢者俊傑) 효자(孝子) 효부(孝婦) 모여 사는 터전이 이곳이니 선조들의 뜻을 이어 어버이를 섬기고 이웃간에 정을 나누어 오순도순 살아가는 「장수마을」 「범죄없는 마을」의 전통 세워 명예를 드높이고 천대만대 영원토록 구병리를 지켜가세!
2012년 구병리 마을유래비추진위원회

여섯 살 때 강원도 횡성에서 선친을 따라 이곳 구병리로 온 이원준(81)씨는 “선친이 정감록 비결을 보고 구병리로 찾아오게 되었다” 고 말한다. 이씨는 구병리 지명에 “소는 옛날 우리 생활에서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가축이었지요. 그만큼 살기 좋은 마을이라는 것이지요. 우각봉은 소산이요, 윗멍에와 아랫멍에는 꼬부라진 소의 멍에와 닮았다 하여 지은 이름이죠. 우복동은 소의 자궁이고 풍경바위는 소의 방울입니다. 그만큼 우리 구병리가 길지라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속리산 천왕봉의 정남쪽에 위치해 있는 구병리는 산세가 좋고 신선과 학이 놀았다는 신선대, 천년을 살고 만년을 산다는 학이 놀던 봉황대가 마을 뒤편에 자리 잡고 있어 그 곳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그대로 식수로 사용해 왔는데 그것의 정기를 받아 건강과 장수를 지킬 수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구병리 마을은 2001년도에 행정자치부의 정책사업인 아름마을 가꾸기 시범사업에서 충청북도의 대표 마을로 선정되었다. 아름마을의 '아름'은 '아름답다'는 의미로도 쓸 수 있지만, 두 팔을 벌려 껴안은 둘레길이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서 '주민공동체', '풍요로움' 등을 강조하는 말이다. 즉, 우리 구병리는 환경과 경관이 수려한 아름다운 마을이기도 하지만 인심 좋은 사람들과도 함께 할 수 있는 풍요로운 마을이다.
최근에는 천주교 교우촌이면서 공소가 있었다는 역사적 자료가 확인 되면서 새로운 성지로 부각되고 있다. 1827년(정해년, 순조 27년)에 상주진영에서 멍에목(구병리) 교우촌을 급습하여 당시 내포지역에서 이주해 온 천주교신자 박경화, 박사의 가족 5명과 안군심, 김사건 등 7명이 검거되어 대구감영에서 순교 하였다.
한국인으로 두 번째 사제가 된 최양업(崔良業) 신부가 1851년 10월 15일 프랑스인 르그레즈 신부에게 보낸 서한에 의하면 멍에목(구병리)에 천주교 공소가 있어 최양업 신부가 이곳에서  사목활동을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서울 절두산 서고에서 발견된 “공충도 사학죄인성책”에 의하면 1868년(무진년) 4월에서 7월 사이에 충청도에서 40명의 천주교 신자를 참수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중 멍에목 공소에서 최용운, 이요한, 최조이, 안루카, 최운홍 5명이 순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제 멍에목은 천주교 성지로 지정 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선호하는 순례지로 부각되고 있다.
지금 구병리는 40여가구 8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소득은 지금은 관광업이다. 산자락을 끼고 그림처럼 자리 잡은 여러 팬션들이 자연의 모습을 거스르지 않고 자리하고 있다.
구병리에 살면 자연이 일부가 되어 자연에 순응하면서 사람에게 필요한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을 내주는 구병리는 이제는 오지가 아니라 보은의 명소로 농촌관광마을로 재탄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