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 말이라도

김대식(한국전례연구원 전문위원)

1998-03-07     보은신문
유식이 무식만 못한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쉬운 우리말로 말하면 될 것을 어려운 문자를 사용해서 유식한척 하다가 무식이 탄로 나는 경우를 말한다. 예컨대 벗으로서 아주 허물없이 가깝고 친한 사이를 일컫는 막역지간을 줄여서 “막역한 사이”라는 뜻으로 말한다. 문제는 “막역한 사이”라는 뜻으로 말한다는 것이 “막연한 사이”라고 해서 어리둥절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막연한 사이”란 뚜렷하지 못하고 어렴풋이 아는 정도이니 본래의 의도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것이 된다.

“핸디캡”이란 단어는 불리한 조건을 의미함인데도 유리한 조건으로 잘못 사용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소(失笑)를 자아내게 한다. 옛 이야기가 생각난다. 젊은 선비와 술집 곧 주막이 어디있느냐는 뜻으로 한다는 말이 “노인장, 이 마을에 주가(酒家)가 어디 있습니까?” 연로한 선비는 젊은 선비의 버릇없음을 탓하기라도 하듯이 “이 마을에는 김가(金哥), 이가(李哥), 박가(朴哥)는 많아도 주가(周哥)는 없소이다”

젊은 선비는 동문서답하는 연로한 선비의 갓을 보면서 “노인장, 머리에 쓴 것이 뭡니까?” 연로한 선비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머리가 쓴 것은 오이 대가리요” 노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젊은이는 어이 엇다는 듯이 “아따, 그 영감 말 못할 사람이구먼”하고 혼잣말처럼 내 뱉는다. 노인도 기가 막히다는 뜻으로 “그래, 내가 말을 못타고 이렇게 걸어가지 않겠나”하면서 동문서답만 계속하였다.

어디 그것 뿐이겠는가? 학교의 졸업식에서 학교장이 졸업생에게 마지막으로 「깨우쳐서 가르친다」는 의미의 회고사가 지난날을 돌아본다는 뜻의 회고사가 될 때는 벌어진 입이 좀처럼 다물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졸업식은 단순한 통과의례라기 보다는 졸업의 의미를 한번쯤 되새기면서 차분한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의 준비」를 하는 자리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의 영광이 있기까지는 고마운 분들이 많다는 것을 일깨워 주어야만 한다.

그 대상의 첫 번째가 부모님이다. 부모님은 자녀를 위한 일이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눈물겨운 뒷바라지를 해 주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은혜에 버금가는 것은 스승님이다. 부모가 낳아주고 키워주었다면, 스승은 이상을 심어주고 인격을 길러주었으며, 희망과 용기를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한 마디의 말이나 낱말 하나를 사용하더라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