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편단심 민들레야

김영애(보은삼산, 충북여백회원)

1998-02-28     보은신문
민들레의 재미있는 특징이라면 풀잎의 숫자만큼 꽃대가 올라오는 것이라 한다. 풀잎하나, 풀잎 둘, 풀잎 셋, 꽃도 셋… 내키는 대로 피어나는 줄 알았던 꽃 뒤에는 또다른 숙명으로 묶여진 푸른 잎과의 고리가 있었나 보다. 양지바른 둑이나 동네어귀의 묵은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할 민들레가 고맙게도 우리집 앞 좁은 골목을 가장 자리에 몇 년째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의 손길과 발길은 물론 고물상의 리어카 바퀴에도 시달림을 당하고 가끔은 옆집 할머니에게 잡초로 내몰려서 허리가 끊겨지는 수난을 당하곤 한다.

그런 험난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올봄에는 지난해 늦도록 남아있던 질경이보다도 먼저 싹을 내밀고 포기도 실해졌다. 썩 부지런하지 못한 나는 특별히 공들여 집착하지 않아도 풋풋하고 싱그러움을 전해주는 그런 풀들이 좋다. 살 곳을 찾아 아무 곳에나 돋아나는 망초와 괭이 밥도 정겹고 옥상의 빈 화분에서 꽃을 피우는 애기똥풀도 반갑다. 대지가 잠에서 깨는 봄의 이른 아침! 땅의 숨결 같은 안개가 뭉근히 피어오르면 이슬을 매단 채 푸른 염원을 곧추세우는 연녹색의 풀잎들은 정말이지 아름답고 찬란하다.

숲이 좋고, 풀이 좋고 가녀린 들꽃들이 참으로 좋아서 그냥 산기슭에 피어나는 꽃이나 풀이었다면? 아니면 글들과 교감하는 순한 동물이기로 했다면? 나의 심성이 그처럼 티없이 맑고 순수하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수없이 되풀이되는 오류 속에서 풍진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기 일쑤이니 아쉬움은 크지만 섣불리 가늠해볼 수 없는 일이다. 민들레의 전생은 하늘의 별이었다고 한다. 그별은 자신의 특권으로 어느 나라의 임금님에게 불행한 운명을 결정지어 주었다고 한다. 평생에 단 한 번 밖에 명령을 내릴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명령을 하고 싶어도 다음 일을 생각해서 언제나 망설여야 했던 임금님은 별에게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쌓인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별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은 하늘에서 이 땅으로 떨어져 꽃이 되어 피어나거라! 그 대는 내가 너희들을 꼭꼭 밟아가며 내 운명의 한을 풀겠노라!" 그러자 하늘의 별들은 모두 떨어져 민들레의 꽃이 되고 양치기로 변한 임금님은 꽃위로 양떼들을 몰고 다니며 짓밟았다고 한다. 억압당해야만 하는 민들레의 과업이 너무 가혹해서 어깨가 눌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낮은 키로 푸른 창공을 흠모하여 꽃을 피우다가 새털보다 더 가벼운 깃을 달고 훠이훠이 허공으로 흩어지고 말지만 날개를 단 그 작은 소망들은 언제까지고 하늘을 유영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세상으로 내민 줄기보다 더 깊이 지층 속으로 파고드는 심지 깊은 뿌리가 있으니 말이다.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끝내 꽃을 피우고야마는 민들레의 투혼이 이 봄에는 더욱 부각되어야함이 우리 모두가 감당해내야 할 오늘의 무게인가 보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