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에 올라
조병옥(충남도 민방위 대책과장, 내북법주)
1998-02-14 보은신문
화신(花信)은 바론 춘신(春信)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선조들은 봄의 전령으로 설중매를 읊었고 요즈음 사람들은 제주의 유채꽃이나 오동도의 동백꽃으로 봄이 오는 소식을 듣는데 예나 지금이나 봄을 느끼는 우리의 정서에는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요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자주 산을 찾게 되는데 봄이 찾아들 즈음에는 산색(山色)부터가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산색은 곧 계절색이다. 아니 산색이야 말로 도연명이 읊은 대로 인간사인 셈이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했지만 산은 반드시 어진 사람만을 반겨주지 않는다. 학문과 도를 닦는 사람 뿐만 아니라 나무를 베거나 구덩이를 파거나 단군이래 오랜 세월 동안 산 수난시대를 맞고 있다. 웬만한 산 정상에 올라 주변을 조망하느라면 도로공사, 택지조성, 공단이나 댐 건설 등으로 수많은 산들이 페헤쳐지고 트랙타와 착암기의 굉음이 귓가를 메아리 친다. 지난날 우리 산림녹화를 위해서 얼마나 몸부림쳤든가 연료원이 오로지 나무였던 시절, 산을 푸르게 한다는 것은 하나의 헛된 구호에 불과했으나 구공탄에 이어 유류와 전기, 가스로 연료혁명이 일어나면서 알몸을 그대로 내놓았던 민둥산들이 우거진 숲으로 변모하는데는 삼십여년이 흘렀다.
우리나라의 산림녹화 정책은 전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기적과도 같은 것이라고들 자주 말한다. 호연지기를 즐기고자 산을 찾는 모든 사람들은 참으로 산을 사랑한다. 그러나 산을 찾는 사람이 늘수록 산을 괴롭히고 해치며 오염시키는 사례 또한 증가해 안타깝다. 매년 봄철만 되면 수십만평의 산림이 산불로 소실되고 골짜기마다 쓰레기 매립장과 골프장, 러브호텔 공사로 붉은 가슴을 헤치고 신음하면서 무언으로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매년 수십만기씩 늘어나는 분묘로 전국에는 약 이천만기의 분묘가 산재해 있는데 하늘에서 내려다 본 우리산하는 『사자(死者)들의 천국』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산길을 걷다보면 비닐, 휴지, 깡통이 어지럽게 널려 있음을 볼 수 있다. 조상들이 물려준 금수강산을 더욱 잘 가꾸고 보호하는 일은 우리와 후손 모두의 책무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갑작스레 몰아닥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번 겨울은 그 어느 해보다도 더욱 을씨년스런 기분이지만 남촌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훈풍과 함께 온 국민이 다시 출발한다는 각오로 자신감을 되찾아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제일인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그런 새 봄이 되길 바랄 뿐이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