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이 준 교훈
김대식(한국전례연구원 연구위원)
1998-02-07 보은신문
일행이 버스에 몸을 싣고 중간 도착지인 인제에서 해장국으로 시장끼를 면하고 한계령에 도착하여 산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 꼭두 새벽 3시30분이었다. 등산장비를 갖추고 후레쉬를 비추면서 산에 오르는 모습이 꼭 무장공비를 색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여 다소 긴장 감마저 들었다. 칠흑같이. 어둠속인데도 구름같이 몰려드는 등산객을 보면서 용기가 생겨났다. 미리 일행에게 고유번호를 부여해 놓고 가끔씩 번호를 확인하면서 일행 중 낙오자가 없는지 챙겨보는 일도 잊지 않았다.
몇시간을 걸었을까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던 어둠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좁아졌던 보폭이 넓어지면서 등산의 속도가 빨라졌다. 산보나 산책같기만 하던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일렬로 늘어서서 가던 일행은 제법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앞서 가던 일행은 찾을 엄두도 안나고 뒤쳐진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듯이 "산행도 인생항로"와도 같은 느낌이 든다. 동시에 출발한 일행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많은 격차가 벌어지기에 말이다. 산행이 평탄한 것만이 아니듯이 인생의 길도 우여곡절이 있기에 생각해 본 것이다.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까지는 별 무리 없는 산행으로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정복의 일념으로 가벼운 마음속에서 등반이 진행되었다. 등산길 좌우에 펼쳐진 산야는 비단에 수를 놓은 듯 하였고, 병풍처럼 둘러쳐진 단풍물결은 바라보는 마음을 황홀하게 하였다. 이제 하산길에 들어섰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더니 하산 목적지인 오색약수터까지는 5km의 거리이고 부지런히 걸어야 3시간 정도란다. 그런데 하산길에 발에 병이 생겼다.
갑자기 무리한 산행이라서 그런지 발자욱을 한발, 한발 내딛기가 왜 그렇게 힘들던지 생각만 해도 암담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산행이 정신력의 싸움이라 마음먹고 옮기기 힘든 발걸음을 한걸음, 한걸음 옮겨 정상에서 출발한지 5시간만에 하산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래도 산행이 즐거웠던 것은 모르는 사람끼리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힘겨워하는 사람에게 격려도 해주는 훈훈한 마음때문이었다. 산은 겸양의 자세에서 올라야 무사히 하산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