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출판계의 거목 ‘박맹호’ 민음사 대표 별세

“문화와 출판산업 균형 이뤄” ... 출판계가 나가야 할 길 보여줘

2017-01-25     보은신문
보은출신으로 한국 문학과 출판계의 거목 ‘박맹호 민음사 회장’이 지난 22일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4세.
박 회장의 별세 소식에 출판계가 큰 별을 잃은 슬픔에 빠졌다고 한다. 윤철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고 박맹호 회장을 다음 출판세계가 본받아할 ‘모범이다 숙제’라고 표현했다. “책을 볼 때 출판산업적 측면과 문학인으로서의 시각을 균형 있게 갖추셨다. 이런 균형잡힌 시각으로 근현대 한국 출판계를 크게 일궈오셨다”고 설명했다.
고인은 1933년 보은군 장신리 비룡소에서 태어났다. 1946년 청주사범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살았던 비룡소는 이후 민음사의 아동과 청소년 서적 브랜드의 이름이 됐다.
1952년 서울대 문리대 불문과에 입학한 고인은 1953년 ‘현대공론’ 창간 기념 문예 공모에 ‘박성흠’이란 필명으로 응모해 단편 ‘해바라기의 습성’이 당선되면서 문학청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자유풍속’을 응모했지만, 자유당 정부를 풍자한 내용이 문제가 돼 탈락했다. 이후 이를 안타까워한 한운사 당시 한국일보 문화부장의 청탁으로 한국일보 일요판에 소설 ‘오월의 아버지’를 실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후 문학청년 생활을 이어가면서 국회의원에 출마한 부친(박기종)의 선거운동을 도우며 지냈던 고인은 1966년 5월 민음사를 창립했다. 그해 처음으로 펴냈던 ‘요가’라는 책은 1만5000권이 팔려나가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고인은 민음사를 통해 특히 문학의 저변을 넓히고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73년 ‘세계 시인선’을 처음으로 펴냈고 1974년에는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 등 ‘오늘의 시인 총서’ 1차분 5권을 펴내 시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6년에는 계간 문학지 ‘세계의 문학’을 창간했으며 ‘오늘의 문학상’을 제정했다. 또 1981년에는 ‘김수영 문학상’을 제정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문학 뿐 아니라 문예이론 사상과 학술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1977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발간했던 ‘이데아 총서’를 통해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등을 국내에 소개했다. 또 1983년부터 1999년까지 16년 동안 424권의 ‘대우학술총서’를 발간했다.
출판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89년 제33대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부회장을 맡았으며 1985년에는 한국단행본출판협회 2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2005년 2월 45대 출협 회장으로 당선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 주빈국 행사 등을 치러냈다.
민음사 경영 과정에서 여러 차례 정부와 불화를 겪으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986년 출협 회장에 출마했지만, 정부의 반대로 당선되지 못했고 1989년에는 서울지방국세청이 민음사에 대해 특별세무사찰을 하기도 했다.
출판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2년 국무총리 표창, 1985년 대통령 표창, 1995년 화관문화 훈장, 2006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인문학 발전에도 애써 2001년 서울대에 민음 인문학 기금 3억 원을 기부한 데 이어 2008년에도 서울대에 인문학 강좌 기금으로 2억 원을 기부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위은숙씨와 상희(비룡소 대표이사), 근섭(민음사 대표이사), 상준(사이언스북스 대표이사)가 있다. 보은읍 죽전리에 거주하는 박상호 전 도의원이 친동생이기도 하다.
다음은 지금부터 7년 전인 2010년 3월 본사가 박맹호 회장과 직접 인터뷰한 내용이다. 삼가 깊은 조의를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향 ‘비룡소’에 도서전시장 건립구상”
“내 고향 보은 비룡소(연못이름)에 어린이 명문도서인 도서출판 ‘비룡소’와 관련, 속리산과 연계해 들렀다갈 수 있는 거점지로서의 놀이시설, 도서전시장 등을 포함한 생태공원을 조성해보고 싶은 구상을 갖고 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떠나온 고향이지만 부친의 유지와 형제들의 숨결이 밴 고향 보은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늘 생각을 해왔던 것입니다.”
지난 66년 창립된 ‘민음사’는 이젠 명실 공히 한국 출판업계의 대표적인 대명사로 명문출판가로 거듭났다.
대학 학창시절부터 누구라고 명명할 것도 없이 인문학에 대한 열정과 순수문학에 대한 의지가 이뤄낸 결실이기도 했다.
“좋은 출판사란 사람들이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인맥들이 구성될 때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것을 뒷받침한 것이 바로 저에게는 ‘좋은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 동기동창이었던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애정 어린 조언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녀들의 출판경영에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박 회장은 인문학을 대단히 사랑했던 장본이기도 하다.

부친 국회의원, 남동생 도의원 지내
“고향 보은은 이 나이가 되도록 결코 잊을 수 없는 곳입니다. 부친께서 어려웠던 시절인 1960년대 시절 국회의원을 지낸 곳이고 동생(박상호) 또한 도의원을 비롯 충북도의회부의장을 지낸 곳입니다. 또한 태생지인 비룡소(飛龍沼)는 신촌 서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입구의 깊은 냇가에 웅덩이가 생겨 용이 놀다가 승천하였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 풍수상 명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친이 뜻있는 유지들과 함께 장신리 비룡소 절벽 위에 성미정이란 정자를 세웠습니다.”
이 정자는 박영권의 효행을 가상히 여긴 뜻있는 인사들이 계를 조직, 성미계라 하고, 그의 아들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박기종씨(작고)가 1967년 성미계의 협력으로 선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정자와 효자비각을 세운 것이 바로 성미정(成美亭)이다.
결국 그는 출판업계의 성공조차 결국 태생지에 대한 보은(報恩)의 마음으로 이어진 결과임을 은근히 내비치고 싶어 했다.

2세경영의 성공적 신화 이뤄낸 큰 결실
그는 동종 출판업계에서도 손꼽을 만한 2세경영의 성공적 신화를 이뤄낸 결실을 얻어냈다.
서울대 출신인 큰아들 명섭(45·황금가지)씨와 역시 서울대 공대출신인 상준(39·사이언스북스)씨는 민음사출판그룹의 공동대표로서 또한 각각의 출판사 경영인이기도 하다.
또한 서울대 미대출신으로 색감과 그림 등에 특히 재질이 돋보인다는 평을 듣는 상희(49)씨는 어린이 전문도서로 유명해진 ‘도서출판 비룡소’의 대표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사실 비룡소를 창립하게 된 것은 손자손녀들에게 읽힐 책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전에 아동 책을 둘러보다보니 그림이나 재질 등 조악하기만한 어린이도서를 접하고 실망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만들게 된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책, 컬러나 그림 등 전 세계 유명한 아동도서들의 그림을 모아 비룡소란 어린이전문 도서를 만들게 된 겁니다.”
또한 그 유명세를 몰아 도서출판 ‘비룡소’는 아동을 위한 그림책 출판사로 아동문학의 가치를 인정하는 ‘황금도깨비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그동안 불티나게 팔렸던 ‘황금도깨비상’상에 빛나는 유아그림책 선정도서에는 판타지작품의 동화책인 ‘영모가 사라졌다’(2003), 유아그림책인 ‘입이 똥꼬에게’(2007년), 젊은 강정연 작가의 새로운 시도로 만들어진 동물이 주인공으로 인간세계를 풍자한 ‘건방진 도도군’(2007) 등이 있다.

‘오늘의 작가상’ 등 제정 문학인 다수 배출
꿈이 많았던 학창시절, 그는 정치의 가풍과 가업을 잇게 하려는 부친(15년전 작고)에 반기를 들고 무조건 서울로 상경했다.
“이 나이가 되었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고향 보은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합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그때는 왜 헤아리지 못했는지 지금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는 몸은 서울에 있지만 늘 아련한 추억의 장으로 고향인 보은을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정치인의 집안에서 순수문학만을 고집하며 서울로 상경했던 그가 순수문학인들을 배출하는 문학 등용문을 제정한 것은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오늘의 작가상은 1978년에 제정하였지요. 제정하게 된 그 당시 ‘부초’의 한수산, ‘영원한 쏭바강’의 박영한, ‘사람의 아들’인 이문열 등등 창작문학(순수문학)에 대한 출판이 무척 어려웠던 시절이었어요. 그리고 판매도 저조했구요. 그래서 본격소설이 안 팔릴 때 ‘오늘의 작가상’을 만들어 순수문학을 하려는 작가들과 순수문단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한 일환으로 제정을 하게 된 겁니다.”
그는 그 당시 신문사가 주최한 신춘문예의 경우 한 번의 상금만 주고 마는 그런 상황에서 ‘오늘의 작가상’이 ‘프랑스의 꽁꾸르상’처럼 유명한 작가군을 만들어 인세를 받아 작가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의 작가상’을 제정하고 1회 째에 한수산의 ‘부초’가 100만부를 돌파해 일약 베스트원에 도달하는 결과를 얻어냈고 두 번 째로 출판한 박영한의 ‘영원한 쏭바강’이 40만부를, 3회 째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 수백만부가 팔려 스테디셀러로 발돋움하는 문학의 활기를 띠는 결정적 계기를 이루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거대한 뿌리‘로 시대정신을 표현한 김수영시인 문학상 제정 배경에는 인세로 김수영문학상과 그의 시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갈망이 있었고 그 때 보은 출신인 송찬호 시인도 그 중에 한 명”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이번 세번째로 제정된 ‘신인문학상’은 계간 세계문학이 주최로 신인작가들의 새로운 등용문이 되고자 만들어진 것이 계기였다고 밝혔다.

'자랑스런 서울대인'으로 선정되기도
무엇이든 저절로 성공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세련된 책과 질 높은 책을 만들어보고 싶은 출판에 대한 철학으로 가업의 승계를 마다하고 독창적으로 개성에 맞는 일을 택한 것이다. 40여년의 인문학을 화두로 출판외길을 걸어온 서울대학 52학번인 박회장은 서울대학 인문학 발전을 위한 기금 3억원을 기부하기도 했으며 수년 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출판과 관련된 박 회장의 인생스토리를 통해 어려움을 딛고 일어날 때만이 진정한 자수성가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인생의 소중한 교훈을 남기는 대목이다. 언제 어디서나 성공 속에서 잊지 않고 고향발전을 위해 수구초심하는 박 회장의 의지는 보은(報恩)에서 출발한 것임에 틀림없다.
/인터뷰 천성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