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말이 없고 푸르기만 하구나 : 憤怨 / 거인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121
2017-01-05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추연이 슬퍼하니 오월에 서리내렸네
내 시름 우공과 추연 같건만 하늘은 말이 없네.
于公痛哭三年旱 鄒衍含悲五月霜
우공통곡삼년한 추연함비오월상
今我幽愁還似古 皇天無語但蒼蒼
금아유수환사고 황천무어단창창
하늘은 말이 없고 푸르기만 하구나(憤怨)으로 직역해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거인(巨仁)으로 신라 진성여왕 때 은자(隱者)로 왕거인(王巨仁)이다. 작자에 대한 생몰 연대와 행적은 알 수 없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우공이 통곡하니 삼년이 가물고 / 추연이 슬픔을 머금으니 오월(여름)에도 서리가 내렸구나 / 이제 나의 깊은 시름은 돌이키니 예(우공과 추연)와 같건만 / 하늘은 말이 없고 다만 푸르기만 하구나]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분하고 원통함]으로 번역된다. 신라 진성여왕은 행실이 문란하고 국정도 바로 다스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누군가 비방하는 대자보를 써 붙였다. 여왕이 명하여 그를 잡으려 했으나 잡지 못했다. 틀림없이 ‘거인’의 소행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여왕은 거인을 잡아 가두었다. 거인은 억울하여 옥 벽에다 위 시를 썼더니 갑자기 우박이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쳤다. 이에 여왕은 두려워 곧 거인을 석방했다는 시적인 배경이다.
여기서 다음 고사를 알고 넘어가자. ‘于公(우공)’은 한(漢) 나라 사람으로 한 효부가 시누이에게 모함을 받았다. 태수에게 억울하게 죽게 되어 그 여인을 변호했으나 뜻을 이루어지지 못했다. ‘추연(鄒衍)’은 남의 모함을 받아 옥에 갇혔던 추나라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은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인용한다.
시인은 자기의 억울한 시름을 우공과 추연에 비교하면서 하늘은 말없이 푸르기만 하다고 탄식한다. 화자는 아무 근거 없이 남을 무고하는 못된 인간이 있었으니, 하늘을 감동시킨 이 시의 위대한 힘은 신비스럽고도 장쾌한 은유적인 표현이다.
【한자와 어구】
于公: 우공. 痛哭: 통곡. 三年旱: 삼년동안 가물다. 鄒衍: 추연. 含悲: 슬픔을 머금다. 五月霜: 여름에도 서리가 내린다. // 今: 이제. 我幽愁: 나의 깊은 시름. 還: 돌이키다. 似古: 예과 같다. 皇天: 황천. 無語: 말이 없이. 但: 다만. 蒼蒼: 푸르기만 하다. 의태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