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신전 일월비비추
속리산 야생화〈4〉일월비비추
2002-08-10 보은신문
그 때였다. 늘 곁에서 필자를 지켜보던 선배가 자신이 숭배하고 있는 종교시설로 필자를 데리고 갔다. 초입에서부터 엄숙함이 느껴지던 그곳에서 이제까지 느끼지 못한 무언의 언질을 받았다고나 할까? 스스로 아파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무게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신전이란 이런 곳이었을까, 비로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롭게 만나진 분위기에 대한 대가인지는 몰라도 필자는 굳게 닫혔던 가슴 한 구석에 바늘구멍만한 틈을 그 선배에게 허락했다. 하지만 그 종교와 인연이 없었던지 신앙심이 생기지 않아 선배를 안타깝게 했다. 그렇게 그 선배와 오래 대화를 나누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어찌 어찌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우연히 거리를 걷다가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근처 찻집으로 두 사람은 발걸음을 옮겼다. 선배는 변함없이 부드러운 눈빛과 따뜻한 언어로 필자를 감싸주었다. 내가 어려울 때 정말 큰 힘이 되어주었던 선배였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사회성이 많이 부족한 필자는 연락처를 묻지 못했고, 그냥 그렇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세상 어디에선가 평범하게, 그러나 평범하지 않은 눈으로 누군가의 아픔을 위로할 그 선배를 떠올리면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신전이 떠오른다.
일월비비추는 일찌감치 더불어 사는 법을 터득한 그 선배같은 꽃이다. 비비추, 참비비추, 좀비비추와는 다르게 꽃이 주먹처럼 뭉쳐서 피는 게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월비비추를 보면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말도 떠오른다. 여러 꽃잎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꽃 형태를 이루는 일월비비추는 산지 물가에서 자라는 백합과 다년초이다. 7월에서 9월 사이에 연보라빛 꽃을 피우며 10월에 결실을 맺는다. 전체 길이가 50∼60센티 정도의 작은 체구에 잎은 모두 뿌리에서 난다. 다른 비비추들에 비해 둥근 잎을 가지며 잎자루 밑부분에는 자주색 점이 있다.
뭉쳐있는 꽃 하나 하나에 경건한 이야기들이 숨어있을 것 같은, 그래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미지의 신전을 여행할 날개를 달아줄 것만 같은 꽃이라서 소개해 본다.
〈제공 : 속리산 관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