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니고는 붓의 터치까지 표현할 수 없죠”
한국 비림박물관 수작업으로 비석새겨, 중국 전문가 3명 초청 6월부터 작업
2002-07-27 송진선
천막으로 7월 한여름의 태양열을 가린 채 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석재사의 석공처럼 기계로 글씨를 새기지 않고 3명이 일일이 비석에 글씨를 새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6월6일 중국 하남성 개봉시에서 전각을 가르치는 학교의 교수인 주소종(周紹宗, 56)씨와 그의 제자인 진상군(秦相軍, 32), 창계철(昌啓哲, 24)씨가 중국 한원 비림원 이공도 선생의 부탁으로 한국 비림원에 파견된 것.
이들은 앞으로 3개월간 작업을 하고 중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3개월간 유명한 인물의 글씨를 복사해 이를 그대로 비석에 새기는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오석 위에 검은 색의 물을 들여 복사본의 글씨를 그대로 복사하고 복사된 글씨를 한 자 한 자 조각칼 같은 것을 돌에 새긴 글씨 위에 대고 망치로 조각칼의 머리부분을 쳐서 글씨를 파내려 간다.
글자 한자 한자마다 붓이 지나간 터치를 그대로 살려 붓털 한 올의 흔적도 남기는 작업이므로 보통 한 작품 마치는데에 3일은 꼬박해야 할 정도로 섬세하기가 이를데 없다. 이들이 머물면서 작업할 것이 150점 가량 된다. 이 중에는 고구려 19대왕인 광개토대왕비의 비문도 있다. 비의 높이만 6m39㎝, 앞뒷면의 폭이 2m에 이르고 옆면의 폭은 3m1㎝에 이른다. 이 정도 크기의 돌을 구하지 못해 일반 화강암으로 붙여서 크기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석재공장에서 구하기로 가닥을 잡아 한국 비림박물관이 돌을 구하는 중에 있다.
광개토대왕비는 장수왕이 아버지의 전적을 비에 새겨 놓은 것으로 청나라 초에 발견됐으나 일본인들이 일부의 글자를 훼손시켰다. 50년동안 광개토대왕을 연구한 중국인 진유국씨가 광개토대왕 비문을 글자 크기까지 살려 작성한 비문을 한달 전쯤 한국 비림원에서 구했는데 글자만 무려 1800자에 이른다. 한국 비림원은 광개토대왕 비문은 비림박물관 앞에 집을 지어 설치, 한국 비림박물관의 상징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비석을 보면 역사와 문학, 종교, 회화, 서예, 조각을 알 수 있다고 말한 허유 이사장은 월드컵 4강신화를 이룩해낸 태극 전사들을 찬양하는 글과 정몽준 대학 축구협회장, 히딩크 감독, 선수들의 서명도 새겨놓은 전세계에 하나 밖에 없는 작품도 만들었다. 그동안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말까지 역사적으로 훌륭한 인물 위주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앞으로는 문중의 훌륭한 사람이나 발굴되지 않은 사람, 현대작가의 작품도 발굴해 비에 새겨 넣는 작업을 계속, 우리나라 고대부터 현대까지 역사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비림원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10월30일 서예, 문인화(사군자) 공모전을 통해 특선 이상으로 뽑힌 작품도 비석에 각인해 영구히 남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