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외사랑의 자취
속리산 야생화〈2〉용머리꽃
2002-07-27 보은신문
어릴 적, 필자의 크레파스는 늘 자주색이 먼저 닳아 없어졌다. 다른 색깔들은 모두 손가락만한데 자주색 크레파스는 금세 팥알만해져 필자를 안타깝게 했다. 필자의 자주색 사랑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디자인과는 무관하게 자주색옷을 좋아했고, 양말이며 운동화까지도 자주색이 섞인 것을 좋아했다.
자주색에 대한 외사랑은 거의 집착에 가까운 것이어서 어른이 된 지금도 자주색을 가진 야생화는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처럼 가슴을 잔잔히 물들이는 힘이 있다. 자줏빛 용머리꽃, 눈치 빠른 독자들은 "용머리꽃"이라는 이름에서 이미 그 형상을 짐작하고도 남았으리.
꿀풀과에 속하는 용머리꽃은 깊은 산이나 숲 속에 분포하며 15∼30센티 내외로 자라는 아담한 꽃이다. 6월에서 8월 사이에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의 머리모양으로 꽃을 피운다. 꽃은 원줄기 끝에 자줏빛으로 달리며 9월에 결실을 맺는 여러 해 살이 풀로 잎은 잔잔하게 마주 난다.
수목원이나 국립공원 등에서도 볼 수 있지만 요즘은 우리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러 야생화와 관련된 단체나 모임 등에서 야생화 보급에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여간 반갑지가 않다. ‘신토불이’라는 말과 함께 우리 것을 보존하려는 노력은 토종의 참 아름다움과 가치를 새롭게 깨닫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된 후, 그들의 자녀들과 손 잡고 밖으로 나갔을 때 곳곳에서 우리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잔잔한 감동을 준다고 생각해 보자.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넉넉해 지는가. 더 늦기 전에, 더 힘들어 지기 전에 우리 것의 소중함이 자주빛 용머리꽃 같은 사랑으로 우리 가슴 속에 깃들기를 기원해 본다.
〈제공 : 속리산 관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