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인지우(杞人之憂)

2016-09-29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요즘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나라가 뒤숭숭하다. 지진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자연현상의 하나로서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만 비가 많이 내리면 홍수가 되고 바람이 크게 불면 태풍이 되듯이 그 강도가 높으면 재난이 되고 또 그 강도가 높은 만큼의 피해가 따르기 때문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소두방 보고 놀란다고 이 번 지진으로 놀란 경주 지역의 주민들은 아마도 트라우마로 인한 공포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사건으로 한번 어려움을 겪고 나면 또 같은 상항을 당하게 될까봐 불안 해 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가끔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강도 높은 지진 재난 소식을 들으면서도 우리나라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겨 왔다. 우리나라도 옛적 신라 때부터 근대에 이르기 까지 몇 차례 지진 피해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고는 해도 내 평생에 이번처럼 강도 높은 지진은 처음 들어 봄으로 지진에 대한 두려움은 모르고 살았기에 이러한 무관심들이 그 동안 내가 안일하게 살아오는데 도움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이번 지진이 관측 이래 최 강도라 하니 이제 생각 해 보면 내가 어리석었던 것 같아 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나는 결혼을 하고도 부모님 밑에서 2,3년을 함께 살면서 농협에 근무를 하였는데 아버지와 친분이 두터운 분의 권유로 조그만 사업을 한답시고 그 당시의 신흥 도시인 성남시로 새 살림을 나게 되었다. 그런데 사업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사업의 사 자도 잘 모르는데다가 때 마침 불어 닥친 유류 파동으로 어려움을 겪던 차에 아내도 몸이 좋지를 않아 귀향을 하게 되었는데 귀향을 하려면 부모님이 함께 계신 형님 댁으로 다시 갈 수도 없고 하여 집을 지어야 했다. 그런데 그래도 도시에서 몇 년을 살았다고 해서 인지 재래 농촌 주택보다는 좀 별나게 지어 보겠다는 마음으로 슬래브 지붕 집을 지으려 생각하고 건축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던 나는 마음만 욕심 일 뿐, 건축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마을 하천변 모래로 벽돌을 찍어 벽을 쌓고 지붕은 지금처럼 레미콘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하천 모래자갈을 가져다가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콘크리트 슬래브 지붕을 하게 되었는데 말하자면 부실 공사를 한 것이다. 집을 짓고 보니 겉모양은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지만 얼마를 살다보니 벽체에 여기저기 금이 가고 지붕은 비가 새기 일쑤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수리를 해가며 지지난 해 봄까지 살았는데 그 것이 바로 내가 어리석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내가 진짜 바보로 살아온 것은 그 집을 짓고 몇 년이 지나고 부터서인데 막내가 태어나던 해로 기억 되니까 아마도 1978년이 아닌가 싶다. 그 해에 지진으로 집이 꽤 많이 흔들려 불안하기는 했어도 별 피해가 없던 터라 곧 잊고 말았는데 그 때부터는 나보다도 형님께서 걱정이다. 집 구조가 취약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형님은 슬래브 집은 목조 집과는 달라 지진이 나면 식구가 다 죽을 수 있으니 빨리 집을 다시 지으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성화를 하셨는데 그 때 마다 나는 괜한 기우라고 일축하곤 하였다.
기우라고 하면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뜻이지만 원래는 기인지우(杞人之愚)라는 고사 성어로 옛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기 나라의 어느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면 피할 데도 없다는 걱정에 매여 살았다는 이야기에서 유래 되었다고 하는데 그때 기 나라에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속담도 없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나는 내가 바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형님께서 기 나라 사람처럼 공연한 걱정을 한다고 여기면서 30년을 넘게 버티며 살아 왔는데 언젠가 형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몸이 전 같지 않다고 하였더니 그러면 몸이 더 나빠지기 전에 빨리 집을 다시 지으라고 또 같은 걱정을 하셔서 형님의 걱정 보다는 큰 애가 저도 나중에 퇴직을 하면 고향에서 살고 싶다고 하기에 이젠 건축에 대해서도 좀 알고 있어 이번 엔 철근 콘크리트 벽으로 튼튼하게 다시 지어 옮기면서 살던 집은 철거를 하여 텃밭으로 이용하고 있다.
12일 저녁 주방에서 TV를 보던 아내가 지진이 난 것 같다고 하기에 거실 소파에 누어있던 나는 잘 모르겠다고 하였는데 조금 후에는 크게 흔들려 나도 놀랬다.
경주 지역 지진 강도가 5.8이라는 뉴스 속보 자막이 나온 후에 형님께 전화를 걸어 장난삼아 형님 덕분에 안 죽고 살았다고 했더니 나도 지금 네 형수와 그 얘기를 하고 있다며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