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퇴장

우완제(회북 애곡, 충북도청 공보관실)

2002-07-20     보은신문
한 달 동안 감동과 환희로 달구었던 한·일월드컵 축구대회, 우리에게는 의외의 큰 성과를 남겨놓고 또 하나의 역사 속으로 서서히 식어가고 있다. 살아가는 방식이 우리와는 사뭇 이질적인 이방인에게 전격으로 맡겼던 ‘월드컵 축구 대표팀 감독’ 국내 언론과 국민들이 초기부터 가시적인 성과를 놓고 성급한 기대와 질타를 가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지도이념과 철학, 그리고 계획된 일정에 따라 흔들림 없이 대비해 온 결과, 온 국민이 바라던 기대 이상으로, 우리 한국 축구사를 획기적으로 장식한 ‘거스 히딩크’, 그도 갈 때는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고 하면서 “또 다른 상봉을 기약한다”는 여운을 남기고 돌아갔다.

나중 일이야 어찌되든 그가 남기고 간 흔적과 교훈은 실로 매우 크다. 정치권이나 경제, 학계 등에서 히딩크식 경영기법이나 철학을 도입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게 되었고 조금은 요란스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월드컵이 끝날 무렵에는 그가 우리나라에 계속 남아있기를 기대하는 국민적 여망이 분분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결국은 떠나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 분명 떠나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떠나야 할 때를 아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자신이 어떤 분야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미래와의 연계를 놓고 냉정하게 결정하는 예지도 우리네 인생에는 꼭 필요하다. 만일 히딩크가 국민의 여망대로 계속 남아서 우리나라 축구에 계속 관여하게 되었다면 상당 수준의 축구 발전은 계속되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월드컵이 끝났을 때 받았던 국민적 지지가 변함없이 이어지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히딩크! 그 자신은 정말로 아름다운 퇴장을 한 것이다. 5공 시절, 장성으로 퇴역한 제천지역의 이모씨는 곧바로 정계에 들어가 10여 년 정도 활동하다가 그만 둔 것으로 기억된다. 끝무렵 대통령 선거 때 김모 전 대통령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끝으로 정계를 떠났는데, 그는 그 당시 ‘조용히’정계은퇴를 선언한 후 지금까지도 생사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기척조차 없다. 나는 그 당시 그분이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라는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그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에 부화뇌동되어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었다.

그런데도 10여 년의 세월을 넘어온 지금 그분의 그 때 당시의 결단은 아름답고 명징하게 내 가슴에 살아있다. 정계은퇴를 국민들 앞에서, 그것도 매스컴을 이용해서 대대적으로 선언했다가 ‘국민의 뜻(?)’을 빌미로 또다시 돌아오는 정객, 과거의 이름 값을 기반으로 하여 이렇다 할 치적도 없이 한 세대가 훨씬 지나도록 권력의 단물에 빠져 국민의 식상한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노탐(老耽), 보스의 입맛이나 자신의 입신에 급급하여 이리저리 빌붙는 정치인들. 이러한 와중에서 이모씨의 정계은퇴를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아름답고 멋있는, 장부다운 퇴장이었다.

‘아름다운 퇴장’은 분명 때가 있는 것이다. 그 시기를 놓친다면 자신은 물론, 주변이나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만 끼칠 뿐이다. 바둑에서도 국면이 불리해서 도저히 반전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면 순순히 돌을 거두는 게 기도(基道)인데, 거개의 사람들은 계가로까지 물고 늘어진다. 주된 속셈은 상대방의 덜컥수나 혹은 꼼수로 뒤집을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요행이라는 것은 어떤 의도가 아닌 돌출변수인데도 그것이 생활 속에 배어 있다는 것은 허황에 들뜬 삶 그 자체이다.

훌륭한 음악가의 아름다운 은퇴란, 그가 여생을 보내면서도 삶의 귀가에는 늘 열정적이었던 무대에서의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상기하면서 그 순간들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언제까지나 소중하게 간직하려 한다는 점이다. 고즈넉한 여유와 건강한 삶을 명약관화하다고 하겠다. 그렇지 않고 물러날 때를 망각하거나 잊어버린 채 박수소리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도취되어 힘이 다 닿을 때까지 무시로 무대에 나선다면 관객들의 호응이 과연 계속 이어질까.

로마의 휴일, 사브리나 등으로 유명했던 배우 오드리 햅번은 발랄하고 청순한 이미지로 세계 남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었다. 한 시대를 자신의 무대로 화려하게 풍미했던 그녀도 말년에는 아프리카, 베트남, 소말리아 등을 다니면서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였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그녀의 마지막 인생무대 모습은 놀라웠다. 비록 영화 속에서의 모습은 간 데 없는, 영락없는 여느 늙은 여성의 모습이었지만 인간으로서 오드리는 더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있다.

아름다운 시 한편 소개한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님의 시, 「낙화(洛花)」의 전문이다.‘사랑’과‘청춘’이 때에 다달아 시들어 감을 낙화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면서 슬픔과 허무보다는 때가되면 나(我)라는 존재의 또 다른 미래를 기대하면서 성숙한 죽음을 맞는다는 자연의 순리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본다.

즉,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낙화’의 모습에서, 떠나야 할 때를 분명히 알고 가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통찰과 예지가 서려있다. 꽃이 떨어진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것이며, 그러한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이별이나 죽음의 ‘뒷모습’은 이를 데 없이 아름답다는 깨달음으로 형상화되어 지금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하겠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