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짓다 : 偶吟 / 약헌 홍현주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9】

2016-07-21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고향을 생각하며 짓는 시가 많다. 그만큼 고향은 향수와 더불어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고향은 봄과 더불어 뗄 수 없는 어휘인 지도 모르겠다.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따스한 봄소식을 맞이했던 때, 그 봄이 시인의 가슴 속에 뭉클하게 남아 일렁거리게 했다면 깊은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시심을 시인묵객들이 어디 가만 둘 수가 있겠는가. 봄소식과 함께 고향길 걷던 때를 생각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偶吟(우음) / 약헌 홍현주
지저귄 새 울음에 나그네 꿈 깨어나니
불현듯 고향 생각 봄 나무에 맴돌구나
꽃잎이 빈산에 가득하니 내 고향 길 어디인고.
旅夢啼鳥喚 歸思繞春樹
여몽제조환 귀사요춘수
落花滿空山 何處故鄕路
락화만공산 하처고향로

우연히 짓다(偶吟)으로 번역되는 오언절구다. 작자는 약헌(約軒) 홍현주(洪顯周:1793∼1865)로 정조의 사위다. 우의정 홍석주의 아우이며 정조의 둘째딸 숙선옹주(淑善翁主)와 혼인하여 영명위(永明尉)에 봉해졌다. 1815년인 순조 15년에는 처음으로 나간 벼슬로 돈령부사가 되었고, 문장에 뛰어나 당대에 명성이 높았다. 저서로는 [해거시집]이 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새 울음에 나그네 꿈 깨어나니, 고향 생각은 봄 나무를 맴도는구나. 떨어지는 꽃잎은 빈산에 가득하니, 어느 곳으로 가야 고향의 길인고]라는 시상이다.
위 제목은 [우연히 짓다]로 번역된다. 글쓴이의 부인이 된 숙선옹주(1793~1836)는 정조의 서2녀로 어머니는 좌찬성 박준원의 딸로 수원박씨다. 순조의 친 여동생으로 순조4년 12세의 나이에 홍현주에게 하가(下嫁)하였다. 묘는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에 위치하지만 그 밖에 자세한 것은 알려지지 않는다. 위 시문에 나온 ‘으로 뜻한다.
시인은 지금 시골의 전경을 보면서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 새 울음에 그냥 취했던 꿈에서 깨어나고 고향 생각은 봄에 움돋는 나무에 뱀돈다고 시상을 일으킨다. 떨어진 꽃잎은 온 산을 가득 채우니 어느 곳으로 가야 내 고향 길인지 분간할 수 없다고 읊고 있다.
화자는 무릉도원에서 자연에 취해 그만 꿈을 꾸고 있음으로 엿보게 된다. 불현듯 떠오른 고향생각은 春樹(봄 나무)에 가득하다는 시상 속에서 고향 가는 길을 찾지 못해 서성이고 있다. 자연을 보면서 한 편의 산수화를 그려 가는데 아련하게 떠오른 고향길을 물어서 찾고자 한다.
【한자와 어구】
旅夢: 나그네가 객지에서 꾸는 꿈. 啼鳥喚; 새가 울어 외쳐 부르다. 歸思: 고행생각. 繞春樹: 봄나무를 맴돌다.
落花: 꽃이 떨어지다. 滿空山: 빈산에 가득하다. 何處: 어느 곳. [何]로 인하여 이는 의문사의 문장임. 故鄕路: 고향길. 고향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