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서판(身言書判)

김홍춘(미미컨설팅 대표)

2002-07-13     보은신문
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월드컵도 끝나고 제3회 지방선거도 자치단체장의 취임과 지방의회의 원구성이 마무리되므로 이제 제3기 지방호는 출발하였다. 우선 당선자들을 축하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은 낙선의 고배를 든 후보자에게 따뜻한 위로와 아쉬움을 전하고 싶은 것은 정많은 인간의 인지상정인지 모르겠다. 우리의 옛선조들은 목민관으로 출사하기 위해선 갖추어야 할 요건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요구하였다.

즉 신(身)은 흔히 말하듯 머리는 빌려올 수 있어도 건강한 육신과 정신은 빌려올수 없다 했다. 당선자들의 주장처럼 주민의 상머슴과 대변인이 되기 위해선 건강한 육체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언(言)은 출사한 이들의 말은 변함이 없어야 하며 책임이 수반된다는 것이다. 한비자(韓非子)에 보면 증자(曾子)의 아내가 시장 길을 나서려다 말고 울며 뒤쫓아오는 아이를 달래려 말했다. “어서 집에 들어가 있거라 시장 다녀와서 돼지를 잡아 맛있게 요리를 해줄 테니…” 그녀가 시장을 다녀와 막 사립문을 들어서는데 증자가 막돼지를 잡으려 하고 있지 않는가 그녀는 깜짝 놀라 외쳤다. “여보 아이에게 한 이야기는 농담이었어요” 그러자 증자는 아내에게 말하길 “아이들에게 그런 농담을 해선 안되오. 부모로서 여러 가지를 배우려는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면 그 아이는 곧장 거짓말하는 법을 배우지 않겠소? 거짓말인줄 알면 어미인 당신도 믿으려 들지 않을게요” 증자는 아내가 아이에게 약속한 대로 돼지를 잡아 요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수없이 주민들에게 그들의 입과 말로 약속한 일들은 꼭 지켜주기를 바란다.

다음은 서(書)로서 흔히 속담에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제는 더 많은 지식의 탐구를 위해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왜냐하면 선거과정에서 당선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주변의 눈과 귀와 입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모든 주민과 대화하지 않아도 무엇을 주민이 원하고 주민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는 그들의 지식과 지혜로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을 제 어미에게 올바로 찾아주는 솔로몬의 지혜를 갖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판(判)은 이제 주민의 대표자요 목민관인 그들의 판단력이 주민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요체가 되기 때문에 사심없는 분별력과 판단력은 당선자들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요건이라 하겠다. 중국 전한 시대의 회남자(淮南子)편에 보면 공의휴(公儀休)가 재상이 되었는데 그는 소문이 날 정도로 생선을 좋아했다. 어느 날 물 좋은 생선이 선물로 들어왔는데 공의휴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

그러자 그의 제자는 왈 “선생님께서는 생선을 무척 즐기시면서 왜 그것을 받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으니 공의휴가 말하길 “너무 생선을 좋아하니까 안 받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생선을 좋아할지언정 생선을 받아먹고 재상자리에서 면직당하게 되면 아무리 좋아하는 생선이라 하여도 스스로 먹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생선을 받지 않으면 재상의 자리에서 면직되지 않을 것이니 언제까지 내 스스로 생선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였다.

이 얼마나 자신의 자리를 보존코자 하는 올바른 판단력인가? 이제 당선자들은 자신을 위한 일이나 주민을 위한 많은 일들을 결정지어야 하는 위치에 서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그들의 올바른 판단력을 지켜볼 것이다. 덧붙여 우리 속담에 송도계원(松都契員)이란 말이 있다. 뜻인즉 옛날 송도(개성)에 있는 관리끼리 계를 했다는 말로 ‘조그마한 지위나 세력을 믿고 남을 멸시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한명회가 경덕중지기로 임명되었고, 때마침 좋은 계절이어서 개성부의 관리들이 만월대에서 잔치를 할 때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한 관리가 “우리들은 한양의 옛친구들로서 멀리 개성에서 벼슬살이를 하니 계를 맺어 지내자”라고 제안하니 옆에 있던 한명회도 “나도 좀 끼워주시요” 하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함께 있던 관리들은 한명회의 낮은 벼슬을 조롱하며 거절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계유전난 때 한명회가 으뜸공신이 되자 그를 멸시했던 관리들은 그를 몹시나 부러워했다는 말로 그 후 조그만 세력이 있어도 으시대며 남을 깔보는 사람들을 일컬어 송도계원이란 말이 생겼듯이 정녕 당선자들은 주민과 지역발전을 위한 겸손한 목민관들이 되어주길 간곡히 바랄 뿐이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