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내린 눈(野雪 또는 夜雪) / 임연 이양연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4】
2016-06-16 보은신문
들판에 눈 쌓인 길 처음 뚫고 갈 때에는
아무렇게 이리저리 갈 일은 아닐지니
뒤따른 이정표되리라, 내가 걸어 남긴 자취.
穿雪野中去 不須胡亂行
천설야중거 부수호란행
今朝我行跡 遂爲後人程
금조아행적 수위후인정
들판에 내린 눈(野雪 혹은 夜雪)로 번역되는 오언절구다. 작자는 임연(臨淵) 이양연(李亮淵:1771~1853)으로 조선 후기 문신이다. 호조참판을 지냈고 성리학에 정통했으며 시에도 뛰어나, 사대부로서 농민의 참상을 아파하는 민요시를 지었다. 오랫동안 ‘서산대사’ 작품으로 잘못 알려졌던 이 작품이 이제 주인을 새롭게 찾았으니 다행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들판에 눈 쌓인 길 뚫고 갈 때는, 아무렇게나 이리저리 갈 일 아니네. 오늘 아침 내가 가며 남긴 자취는, 뒤 따라 오는 이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시상이다.
임연의 시문을 기리는 찬시 한 수를 음영한다. [임이 주신 야설 한 수 어둔 밤길 밝히면서, 백범의 평생 금언 가슴 속에 심었으니. 해쳐갈 민족의 등불 잔잔하게 타옵니다]. 임영은 문장이 뛰어났고 성리학에 정통했다.
늙어서도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 문장이 ‘전아간고’하여 후학들이 다투어 암송했다. 시에도 뛰어나 사대부로서 농민의 참상을 아파하는 민요시를 지었다.
시인은 눈이 쌓이거나 숲이 우거진 곳을 갈 때는 아무렇게나 갈 일이 아니라고 시상을 일으킨다. 그러면서 오늘 아침 내가 가며 남긴 자취 뒤에 따른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참으로 맞는 말이나 실천하기가 쉽지는 않다.
화자는 밤중에 내린 눈을 밟고 가는 이 길이지만, 어찌 함부로 밟고 지날 수가 있겠는가. 내가 한 이 일이 뒤 따라오는 사람들의 발자취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했으니 그 본이 되어야 하겠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뒷사람이 따르는 자취가 될 것이니 조심해야 되지 않겠는가.
【한자와 어구】
穿雪: 눈을 뚫고 가다. 野中: 들판 가운데. 去: 가다. 不須: 모름지기 ~해서는 안된다. 胡亂行 : 아무렇게나 다니다. 함부로 다니다.
今朝: 오늘 아침. 我行跡: 내가 가는 길. 내가 행하는 자취. 遂爲: 마침내 ~이 되다. 後人: 뒤따르는 사람. 程: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