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에게 돌아가는 배, 급히 멎게 하면서 : 春江卽事 / 수암 권상하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2】
2016-05-26 장희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부슬부슬 도롱이 입은 외로운 나그네
해 저문 뿌연 안개 모래톱 가리구나
사립문 주막집 물으려고 사공을 멎게 하네.
春雨몽몽掩客蓑 暮江煙浪沒平沙
춘우몽몽엄객사 모강연랑몰평사
急敎舟子停歸棹 隔岸柴扉問酒家
급교주자정귀도 격안시비문주가
사공에게 돌아가는 배, 급히 멎게 하면서(春江卽事)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1641~1721)다. 송시열(宋時烈)의 학통을 이은 노론 계열로, 인물성이론을 지지하는 호론의 입장을 취했다. 1703년부터 호조참판에 이어 1716년까지 13년간 대사헌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부슬부슬 봄비에 도롱이 입은 나그네, 해 저문 강에 뿌연 안개 모래톱을 가린다. 사공에게 돌아가는 배, 급히 멎게 하고, 언덕 건너 사립문에 주막집을 물어 찾는다]라고 번역된다.
위 시의 제목은 [풀리는 봄 강물을 보며]로 번역된다. 비가 오면 어깨에 걸쳤던 도롱이가 생각나는 작품이다. 우장(雨裝)이라고 하여 비옷을 대신해 입고 논에 물꼬를 막거나 트면서, 들판에서 일할 때 볼 수 있었던 도구다. 이런 그림 한 폭의 정경이 시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시인은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를 맞고 집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물을 가두어 대고, 물막이를 하여 모판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롱이를 입고 있는 나그네 저 멀리 뿌연 안개가 그림같이 펼쳐졌던 모래톱을 살짝 가리면서 비가 오고 있다. 안개 낀 시골 정경이 한 눈에 펼쳐지듯 하다.
화자는 이런 자연에 취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나룻배를 타고 가면서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세상을 모두 잊고 자연에 취해보고 싶은 곡주 한 잔에 생각났던 모양이다. [어이, 사공 배를 멈춰보시게. 사립문을 달고 있는 주막집이 어디이던가]하면서 묻는다. 올곧은 시인정신 선비정신을 새롭게 만난다.
【한자와 어구】
春雨: 봄비. 몽몽: 가랑비가 오다. 흐리다. 掩客蓑: 객이 도롱이를 입어 가리다. 暮江: 해저문 강가. 煙浪: 안개 물결. 뿌연 안개. 沒平沙: 모래톱 가리다.
急: 급히. 敎: ~하여금. 舟子: 사공. 停歸棹: 노를 멈추게 하다. 隔岸: 언덕 건너. 柴扉: 사립문. 問: 묻다. 酒家: 주막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