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우정을 기리는 노래[3] : 喜雨亭頌歌 / 춘정 변계량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0】
2016-05-04 장희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군후들 조아리며 축원하는 군왕 만년
문인에게 부탁하여 그 전함을 길이 하니
받들어 글 지어 올리니 화봉 돌에 새기겠네.
君侯稽首我后萬年 思我文人以永厥傳
군후계수아후만년 사아문인이영궐전
臣拜撰辭爲多士先 瞻彼華峯維石可鐫
신배찬사위다사선 첨피화봉유석가전
희우정을 기리는 노래(喜雨亭頌歌)로 변역해본 율(律)의 셋째구인 칠언고시다. 작자는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1369∼1430)으로 문신이다. [내해 죠타하고 남 슬흔(싫은) 일 하지 말며…]로 이어지는 노래가 춘정이 남긴 고시조로 ‘화산별곡’ 등이 전한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군후가 머리 조아리며, 우리 임금 만년수를 축원하였다. 문인(文人)에게 부탁하여 그 전(傳)함을 길이 하실 새, 신이 절하고 글을 지으니 많은 선비 중에 처음이었다. 저 화봉(華峯:북한산 봉우리)을 바라보니, 오직 돌에 만 새길 만하네]라는 시상이다.
전구에서 시인이 읊은 시심은 [날 듯 한 새 정자가 봉황새 나는 듯한데 , 그 누가 지었는가. 어지신 군후(君侯)였는데, 왕이 서교(西郊)에 납셨으나 놀이함이 아니오 . 백성이 한창 씨앗 뿌리는데 가뭄을 걱정하심이었다]라고 쏟아냈다. 왕이 서교에 납시는 것은 백성들 씨앗뿌리는 가뭄을 걱정함이라고 칭송했다.
시인은 군후가 성군의 만년수를 축원하면서 문인에게 그 전함을 길이 하셨다고 칭송한다. 곧 ‘희우정송가’를 지으라고 혼자만을 찍어서 선택한 것이다. 그 은혜를 감읍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래서 화자는 성군의 깊은 뜻을 오래도록 전하기 위해 경복궁을 감싸고 있는 북한산 봉우리 돌이 그 덕을 새길만 하다고 칭송한다. 문학적 상상력이라기보다는 송가의 칭송문임을 보게이다. 시인은 이글의 끝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덧붙이면서 글을 맺는다. [刊此頌章千古昭宣:위의 시문에 이어 마지막 구에 이 기리는 글을 새겨서 천고(千古)에 밝게 알린다]라고 읊고 있다.
【한자와 어구】
君侯稽首: 군후가 머리를 조아리다. 我后萬年: 우리 임금 만년수를 축원하다. 思我文人: 우리 문인을 생각하다. 以永厥傳: 그 전함을 오래하다.
臣拜撰辭: 신이 절하고 글을 지으니. 爲多士先: 선비 중에 처음이다. 瞻彼華峯: 저 화봉을 바리보다. 維石可鐫: 오직 돌에 새길만 하다.